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이 차관직을 그만두고 곧바로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응모했을때 기자가 알고 있는 금융인 중 열의 아홉은 '이미 끝난 인사'라고 말했다.

모피아(재경부 출신이 산하기관을 장악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의 힘을 알고 있는 그들은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한 선임절차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우리은행 주가를 재임기간 중 4배 가까이 올린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도전장을 냈고 막판에는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회장과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박 차관과 경합했지만 선임과정의 끝을 단정하다시피 했다. 결과는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때마침 김종갑 산업자원부 차관이 퇴직과 동시에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으로 선임돼 낙하산 인사 논란을 가중시켰다.

우리금융지주는 정부산하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78%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그 우산 아래 있는 우리은행은 엄연한 민간기업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에 맞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살아남는 곳이다. 우리금융지주는 그런 전략을 짜는 지휘부여서 지분 구성과 관계없이 성격상 민간기업이라고 봐야 한다.

예전 같으면 고위 공직자가 민간부문으로 내려갈 때 6개월 정도 휴식기간이나 자발적인 취업과정을 거치는 게 관행이었다.

요즘 공직자의 민간행은 그런 휴지기도 없어졌다.

실제 박 차관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서 눈앞에 닥친 지분매각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김 차관이 하이닉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선임을 낙하산이나 관치(官治)의 잔재로 보는 관련 업계의 시각은 고쳐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재경부 인사의 물줄기가 관(官)에서 민(民)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민간 기업인이 재무부를 점령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6년간 재무장관은 3명째다.

현 장관인 헨리 폴슨은 30년 이상 골드만삭스에 몸담았던 금융인이다.

4년간 국방부 차관보 보좌역과 백악관 국내문제위원회 자문을 맡았지만 그것은 1974년 골드만삭스에 들어가기 전 초년병 시절이었다.

전임자인 존 스노도 공직경력이 있지만 철도회사 CSX 회장을 지냈고 폴 오닐도 알루미늄 회사인 알코아의 회장에서 재무장관으로 임명됐다.

재정경제부 말대로 능력있는 공직자의 정당한 민간행이 낙하산인사로 폄훼되지 않으려면 그들도 장·차관 정도를 민간에서 영입할 필요가 있다.

내려간 만큼 받아주는 쌍방향 인사가 정착됐다면 박 차관도 우리은행 노조의 환영을 받았을지 모른다.

민간전문가의 영입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공모절차를 통해 일부 민간인을 허리 이상의 공직에 채용해왔다.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사람은 박종구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정도다.

낙하산인사를 뜻하는 '아마쿠다리' 병폐가 심한 일본도 퇴직공무원의 민간기업 취업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국가공무원법을 고친다고 분주하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내 재취업한 기업과 그들이 맡는 직책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도 공직자 윤리법이 있다.

제17조는 퇴직공직자의 관련 있는 사기업체로의 취업을 2년간 제한하고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박 차관의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이 그런 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정했지만 금융계의 불신은 높다.

불신을 끄는 것은 정부 몫이다.


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