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永洙 < 고려대 교수·헌법학 >

노무현 대통령이'원 포인트 개헌'안(案)을 발의할 의사를 밝힌 지 거의 2개월 뒤인 지난 8일 개헌 시안들이 발표됐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개헌안이 발의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변화의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3가지 형태로 나온 시안들 모두가 일정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정당들이 차기 정부에서의 개헌을 약속할 경우에는 개헌 발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개헌의 의지 자체가 한 단계 약화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노 대통령이 개헌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순(手順)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다른 한편에서는 개헌의사를 철회하기 위한 명분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것은 대통령의 주관적 의사보다는 이러한 상황의 전개가 갖는 의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평가하는 일일 것이다.

그동안 '원 포인트 개헌'이 갖는 의미 내지 장점에 대해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던 필자도 이번 개헌 시안과 노 대통령의 유보 가능성 발언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원 포인트 개헌'이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 포인트 개헌'의 당위성을 국민들이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비교하는 가운데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지난 2개월간 논의된 것들을 충분히 수렴해 정부의 개헌시안을 내실화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안은 2개월 전의 입장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둘째 '원 포인트 개헌'의 장점은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및 무책임성에 의한 국정운영의 비효율성을 (5년 먼저) 최소화시킨다는 것에 있는 반면에,단점은 개헌을 두 번에 나눠서 하게 됨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의 지출,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됨으로 인한 독재화에 대한 우려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독재화의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일치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중간평가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2년 간격으로 실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셋째 각 정당들에서 차기 정부에서 개헌할 것을 약속할 경우에는 개헌발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의견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원 포인트 개헌'이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는 차기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개헌이 필요한 이유 내지 현 정부에서 개헌할 경우에 차기정부에서 개헌하는 것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그런데 차기 정부에서 개헌할 것을 약속한다는 전제 하에 현 정부에서의 개헌을 유보한다는 말은,현 정부에서 개헌하거나 차기 정부에서 개헌하거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왜 굳이 현 정부에서 '원 포인트 개헌'을 하고,차기 정부에서 그 밖의 사항들에 대해서 한 번 더 개헌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그럴 바에는 차기 정부에서 헌법 전반에 대한 개헌 필요사항을 정리해서 포괄적인 개헌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이번 개헌시안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들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원 포인트 개헌'의 당위성에 대한 자기확신이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관련 발언들은 정치적 고려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그렇기 때문에 개헌의 방향 및 발의 여부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경직된 태도를,또 어떤 면에서는 원칙이 분명치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원수인 대통령이,그것도 개헌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면,국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얻으려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