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瑩允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대미(對美)관계 변화를 원하는 북한의 기세가 대단하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인간사의 이치가 국제정치관계에서도 맞아떨어지는 것일까?

최근 북한은 최대의 당면목표를 북·미관계 정상화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은 적어도 스스로를 국제관계로부터 고립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특히 경제관계에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하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대외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1984년에는 합영법,1991년에는 라진·선봉자유경제특구를 통해 외자(外資)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개성과 금강산을 특구로 지정했으며,2002년에는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하면서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 내적인 경제개혁을 시도하고 환율도 대폭 인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와 같은 실패의 원인을 북한은 오히려 미국에 돌리고 있다.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들이 철저하게 고립돼 있으며,대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못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을 바꾸어야만 그들 스스로 말하는 '강성대국'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북한으로서는 그런 기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 근거로 먼저 북한은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을 변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준엄하게 항거하고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각오로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두 번째로 미국이 당면한 상황도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리멸렬한 이라크 전쟁의 '늪'속에서 미국이 어려워하고 있고 중간선거에서의 패배와 미국민의 정부에 대한 인식변화 등도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호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북·미관계 개선. 이는 북한이 얻고 싶은 소중한 목표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대외 경제관계를 활성화해 식량·에너지·외화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첩경(捷徑)이라고 북한은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폐기 의도를 보이는 것은 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전략적 수단이다. 이 목표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을 무기로 미국과의 '전쟁'과 같은 싸움에서 많은 전리품을 챙기려고 할 것이다.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경수로를 비롯한 에너지 문제,테러지원국 해제,수출금지법 해제,개발협력을 비롯한 투자 및 국제금융기구 가입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북한이 서두르는 이유도 부시가 당면해 있는 어려움을 역이용하려는 의도가 크다. 미국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부시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최대한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고 내친김에 북·미관계 정상화로까지 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러나 북·미관계 개선 과정은 양측 모두에 살얼음판이다. 가다가 깨져 물에 빠질 수도 있다. 한쪽이라도 약속을 저버리면 되돌이킬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적어도 북한은 미국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9·19조치와 2·13핵합의를 성실히 지켜내야 한다.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이견(異見)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서로가 물러설 수없는 형국이 돼서는 안 된다. 관계개선으로 향한 판만은 절대로 깨지 말아야 한다.

북·미관계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결국 북한체제 변화까지도 가져올 것이다. 이는 중국이나 베트남 사례에서도 잘 인식할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오늘날의 경제적 성과를 누릴 수 있었던 근본 터전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있었다. 지난해 초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의 발전상을 보고 "잊을 수 없는 감명을 받았다"고 한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북한도 그만큼 변화를 강하게 원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 변화가 이제부터는 시작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