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사이언스(컴퓨터공학) 기술 수준이 국가는 물론 기업과 개인의 미래까지 좌우하는 시대다. 컴퓨터 없는 산업과 네트워크는 없다. 어떻게 하면 컴퓨터공학 고급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까. '세계컴퓨터 과학자 서울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12일 '컴퓨터과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란 주제를 놓고 좌담회를 가졌다. 미국 컴퓨터학회(ACM), 서울대 컴퓨터연구소, 수원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는 40여개 국가의 컴퓨터 전문가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5일까지 계속된다.

◆참석자

성창완 교수 (미국 인디애나 대학 컴퓨터공학과)
장성태 교수 (수원대 컴퓨터학과)
배럿 브라이언트 교수 (앨라배마 버밍햄대 컴퓨터 정보학과)
사회:신승윤 초빙교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신승윤 교수=과거에는 학문 영역이 주도적으로 산업을 이끌었죠.그러나 지금은 산업이 학문 영역을 이끌고 있습니다. 산업에서 개발한 것을 이론화해 대학에서 가르칩니다. 컴퓨터과학의 발달 속도에 교육이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장성태 교수=한국은 빨리 변하며 적응해 가고 있지요. 정보기술의 장점은 속도입니다. 한국은 IT 강국 아닙니까. 한국인은 빠른 변화에 긍정적으로 적응하고 있죠.문제는 학생과 교수의 비율이 지나치게 불균형적이라는 점입니다. 교수는 적고 학생은 많으니 가르치는 게 힘에 부칩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질적인 면입니다.

▶배럿 브라이언트 교수=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한국 대학들은 구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오로지 구직을 목표로 가르치면 안 됩니다. 학생들은 모든 활동에 관심을 집중하며 이를 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기본을 배운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기술변화를 따라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창완 교수=컴퓨터공학 수준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당연히 교육이 뒤따라야 하지요. 체계적으로 교육하지 않는 나라의 미래는 근근이 먹고살 뿐 잘살 수는 없습니다.

▶신 교수=현재 교육 과정이 학생들의 직업 선택에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브라이언트 교수=미국의 경우 2001년에 만든 커리큘럼을 그대로 쓰는 학교도 많습니다. 커리큘럼 발전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직업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죠.산업보다 뒤처지는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합니다.

▶신 교수=한국의 경우 공학도가 졸업 후 받는 평균 보수는 사회과학 전공자가 받는 보수보다 적습니다. 포항공대 최우수 졸업자가 다시 의대로 편입한 이유죠.

▶브라이언트 교수=법학 의학은 서비스 분야에 속합니다. 반면 공학은 생산과 직결되는 분야지요. 강대국과 중진국의 차이는 이런 분야에 대한 국민의 시각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과학을 경의를 갖고 대해야 합니다. 중국 일본 대만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한국은 더욱 긴장해야 하겠죠.기술 전쟁의 시대입니다.

▶성 교수=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대학 교육이 정도를 가야 하는데 현재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대학에서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트 교수=미국의 경우 어린 시절 컴퓨터 과학을 배울 기회가 적습니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주에는 약 400개의 고등학교가 있는데 이 중 6개 고등학교만 컴퓨터 사이언스를 가르칩니다. 다른 고등학교들은 주로 컴퓨터 활용만 가르칠 뿐이죠.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없어요. 중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배경지식도 없지요.

▶신 교수=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학생들을 보면 컴퓨터 사이언스를 왜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5명의 학생을 데리고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의력이 없다는 얘기죠.컴퓨터 사이언스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 달랐을 겁니다. 컴퓨터 사이언스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죠.시험문제는 잘 풉니다. 40페이지짜리 수학문제를 줘도 다 풀어냅니다. 대개 석사과정에서 17% 정도의 학생만 과정을 통과합니다. 보통 한 학년에 40명이 들어오니 몇 명이나 졸업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장 교수=한국의 경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커리큘럼에 문제가 많습니다. 올바른 객관식 답을 고르는 훈련을 시킬 뿐이죠.

▶브라이언트 교수=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떤 것을 복사하고 베끼는 데만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창의력을 중시하죠.

▶성 교수=초·중·고교뿐만이 아닙니다. 대학의 경우도 심각합니다. 졸업요건을 강화하려 해도 교육부의 상대평가 방식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죠.일부 학생의 경우 수업을 따라올 수 없어 학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교수=비전공자들에 대한 컴퓨터 사이언스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브라이언트 교수=당연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행 제도는 어쩌면 실패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컴퓨터 사이언스 교육이 없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우는 과학은 컴퓨터 사이언스는 아니에요. 이러니 인문대나 사회대에 진학하면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해선 영영 모르게 되죠.가령 법대를 나와 상원의원이 되어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도를 만들 때도 해당 지식이 없으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장 교수=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의 산업 수요가 적은 것도 문제죠.경영자의 경우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 찾지 컴퓨터 공학을 하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사람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죠.차를 만드는 사람은 별로 인기가 없고 운전하는 사람만 인기를 끈다면 결국 차가 없어져 아무도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겠습니까.

▶브라이언트 교수=1999년,2000년에 '닷컴 붐'이 일 때 IT업계에서 영문과 졸업생을 뽑은 것으로 압니다. (웃음) 문과 계통 인맥이 필요하니까요. 컴퓨터 공학도들이 사회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신 교수=요즘 인기를 끄는 마이스페이스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입니다.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거죠.현대자동차가 많은 돈을 벌지만 구글은 현대와 같은 하드웨어 없이 돈을 벌고 있어요. 이것이 인도가 IT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강한 국가라 하기 어렵죠.

▶브라이언트 교수=빌 게이츠가 지난 7일 '미국도 이대로 가면 과학교육의 위기를 맞는다'고 연설했습니다.미국의 과학분야 비교우위가 점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죠.소프트웨어 측면에 더 힘을 실어야 합니다.

▶신 교수=우리 앞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문제가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식조차 못 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소프트웨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