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 돈이 없는 친할머니는 어디선가 받은 옥막대기를 주는데 여유있는 외할머니는 영상휴대폰을 선물한다. 친할머니가 마음 아파하는 걸 본 손자는 휴대폰에 옥막대기를 매달고 자랑한다. 친할머니는 늦었다며 뛰어나가는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라며 국밥을 떠먹인다.'

TV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한 장면이다. 답답한 세상 탓인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란 말이 대유행이다. MBC가 9시 뉴스와 함께 부동의 관행처럼 여겨지던 저녁 일일연속극 시간을 7시대로 앞당기고 과감하게 8시대에 배치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야말로 사방팔방에서 쓰인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히트는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시작됐을 때만 해도 과연 괜찮을지 걱정스러웠다. 시트콤(situation comedy)의 속성상 부담없고 재미있겠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소재를 계속 찾아낼 수 있을지,행여 억지웃음을 강요하진 않을지 갸웃거려진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온가족을 화면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2007년 최고의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륜도 출생의 비밀도 재벌 2세도 없는 이 시트콤엔 이땅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 들어 있다. 능력있는 며느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시어머니의 안타까움이 있고 실수로 회사에서 해고된 백수(큰아들)의 답답함이 있다.

공부 잘하는 형과 그렇지 못한 동생의 갈등이 있고,결혼이 꿈을 앗아갔다는 생각에 이혼하고 홀로 서보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에 눈물짓는 여성(둘째 며느리)의 고통이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는 남편의 고지식함,동서끼리의 자존심 싸움,젊은 싱글대디의 고충도 드러난다.

서로 밀고 당기면서도 작은 배려에 감동하는 가족 간 사랑이 가슴을 저미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긴장을 위해 은근한 추리적 요소도 삽입된다. 어느 분야에서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려면 관행에서 벗어나고,현실을 똑바로 보고,사실에 충실하고,인간의 약점조차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