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俊模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우리나라 경제가 1970~1990년대의 불균형 성장으로 인해 대기업 주도형으로 변환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는 다양한 창업지원정책들을 쏟아내다가 급기야 정권 말기에 벤처 게이트가 터진 경험도 겪었다. 참여정부의 초기에는 창업분위기가 시들해지고 반(反)기업정서 분위기마저 형성되다가 후기에 들어서야 혁신형 중소기업 정책 등이 마련됐지만 때늦은 정책들의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렇게 정부 정책들이 우왕좌왕하는 통에 우리 경제는 소수 대기업과 올망졸망한 소기업군이 분포하는 전형적인 호리병형 산업구조를 가지게 됐다. 우리경제가 호리병형 산업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는 모습은 사업체 수의 시계열상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1994년도에 중소제조업체 5만6472개사(대기업 계열사 제외) 중 10년 후인 2003년 말까지 생존한 기업이 25%에 불과해(KDI 자료,2005년) 소기업의 중견기업화가 매우 부진함을 알 수 있다. 종업원 규모 250명 이상 중견기업의 비중을 국제 비교(OECD 자료,2005년)해봐도 독일이 2.2%,영국이 1.5%,일본 1.4%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0.2%에 불과해 중견기업층이 옅은 전형적인 호리병형 사업체 분포구조를 보이고 있다.

호리병형 산업구조에서는 고임금과 양질(良質)의 근로조건을 가진 좋은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수 없다. 대기업에서 주로 창출돼 왔던 좋은 일자리 수는 국제분업화,노동절약적 기술진보,아웃소싱·분사화 등 비용절감 노력으로 인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소기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해 생존차원에서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그나마 있는 정규직의 고용불안도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리병형 산업구조에 비해 항아리형으로 고도화된 산업구조에서는 중간허리에 해당되는 중견기업이 대기업과 소기업 간에 산업 미드필더 역할을 해 연구개발(R&D) 투자와 혁신 노력이 왕성하게 이뤄진다. 또 중소기업들도 원천기술과 핵심인재들을 보유하게 돼 산업생태계의 건전성이 제고되고 좋은 일자리 창출의 토양이 형성된다. 호리병형 산업구조에서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도 그 정책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 창출의 핵심과제는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산업고도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간의 산업·고용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 우선 문제되는 것은 현재의 벤처기업육성법 등 기업 관련법들이 분절화(分節化)돼 있음으로 인해 기업의 창업-투자자금 조달-성장-구조조정-혁신-M&A 등 중견기업으로의 연속적인 성장과정을 지원하지 못하고 소기업 지원에만 몰두하는 데 그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기업육성 관련 부처와 담당부서도 분절화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산업고도화의 마스터 플랜이 부재(不在)한 채 분절화된 정책들이 병목 현상을 일으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중견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다수의 벤처 소기업들의 CEO들은 코스닥 시장에 기업이 상장돼 보유주식을 팔아 대박을 이루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문화에서는 당연히 좋은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수 없다. 중견기업이 육성되고 좋은 일자리 창출도 이뤄지려면 기업과 근로자가 동반성장하는 기업문화와 제도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 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생애가 근로자의 생애와 연동돼 숙련형성을 통한 원천 기술이 개발되고 이는 다시 기업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 고용 전문가들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러나 기업 관련 정책과 법제도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중견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토양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고도화를 통한 중견기업 육성없이는 좋은 일자리 창출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