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行 < 수원대 교수 moonhlee@suwon.ac.kr >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무슨 날이라 하여 젊은이들이 연인과 선물을 주고받느라 분주하다.

상술이란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중장년층까지 가세해 백화점 선물 코너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연인들을 유혹하는 공연들도 많아져서 한 달 내내 사랑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가끔 혼자 공연 보러 가는 것을 즐기는 나도 이맘 때면 혼자 가는 것이 꺼려진다. 분명 연인들의 입장을 부추기는 공연장 분위기 탓일 게다.

얼마 전 좋아하는 음악가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기대하던 연주회라서 일찌감치 예매를 해놓고 있었는데,친정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바로 같은 날 당신이 출연하시는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유명한 연주회를 놓치는 것이 아쉬워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으셨던 나의 어머니는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신다. 노인 복지 회관에서 기자 활동도 하시고,각종 악기로 노인 분들과 연주회도 가지시더니 급기야(?) 요즘에는 방송도 타신다. 다른 일이 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그날 나는 실망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영 마음에 걸려서 연주회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북에 위치하고 있는 아담한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잠깐 들른 딸을 보고 금세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 막내딸이에요"하시며 소개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릴 적 "우리 엄마예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한번 으쓱했던 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나의 선택에 깊이 안도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인 단원들은 합창을 하기 위해 무대 위로 천천히 입장을 했다. 불이 꺼진 무대였지만,나는 단번에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도 예전에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내 자식은 금방 알아볼 수 있지" 그러셨는데. 조명이 켜졌다.

잠시 후,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시종일관 방긋 웃으며 노래하는 나의 어머니 모습을 보고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우리 아이가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온 것을 알고 예쁜 짓하며 노래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어머니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미안함에,그래서 더 쓸쓸히 발걸음을 옮기셨을 어머니의 모습에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연인에게 선물을 주는 계절이라고 한다. 우리의 영원히 변치 않는 연인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작은 관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