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청 옆 여관에서 홀로 지내며 재기를 꿈꾸는 주진관씨(60).자동판매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2003년 12월 출근길에 수사기관에 연행됐다.

검찰은 허위로 자판기 임대차계약서를 만든 뒤 금융회사에서 89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며 그를 구속했다.

횡령도 없었고 거래도 정상이었지만 그의 주장은 철저히 무시됐다.

주씨는 2005년 5월 고법이 사기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풀려날 때까지 1년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지난해 3월 대법원도 주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됐다.

부인과는 이혼했고 회사는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강압수사,짜맞추기식 수사로 억울한 피해를 보는 경제인이 양산되고 있다.

◆무죄 선고받는 경제인 늘어

대법원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했지만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경제 관련 재판은 2004년 454건,2005년 515건,2006년 559건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경제 관련 재판은 어음수표법 위반,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포함된다.

지난해(3만6668건)는 기소 건수가 전년(4만1832건)보다 줄었지만 무죄 선고는 오히려 더 늘었다.

전국 법원의 무죄 선고(형사사건 1심 기준) 비율에서도 경제인 피의자의 무죄 비율(지난해 2.14%)이 전체 사건의 무죄 비율(1.01%)보다 배 이상 높았다.

법원이 신중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인에 대한 무리한 기소가 많다는 뜻이다.

헌법 제27조 4항에 규정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수사기관의 '과욕과 오만'(임승관 전 대검차장의 퇴임사)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씨는 "원망을 뒤로 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투자자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며 "경제 관련 사건은 처리가 잘못되면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큰 만큼 표적수사나 기획수사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억울한 경제인이 많은 이유

경제인들은 수사 기간 중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영 손실 때문에 끝까지 무죄를 항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피해가 더 커진다.

사업 몰락에 따른 경제적 파탄은 물론이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어 재기도 바늘구멍이다.

무엇보다 기업인들은 사업상 다양한 거래 관계에 노출돼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죄목으로든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조세나 공정거래 등 기업 경영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벌일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해 무죄를 끝까지 항변하기 힘든 요인이 된다.

심재륜 전 고검장조차 "증거가 있다는 혐의를 갖고 압수수색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수색해서 증거를 찾겠다는 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괘씸죄에 걸리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고 가족이나 친지,동료들이 다칠 수 있다는 피해 의식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고용 임직원들은 대주주 비위(非違)에 대한 수사 가능성 등을 거론하는 수사관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조주행 변호사는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하다가도 별건 수사(혐의와 무관한 사건으로 체포 또는 구속하고 본체를 수사하는 것) 얘기가 나오면 적당히 타협하거나 포기하려는 기업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고위 공무원 출신인 A씨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지만 실제 검찰 수사에서는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경제인 피의자들은 이 같은 유혹이나 압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최근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사법불신풍조를 뿌리뽑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릇된 관행이 쉽게 개선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