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ㆍ現 FRB의장 경기진단 엇갈리는 이유는…美기업 이익 둔화 해석에 '시각차'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과 벤 버냉키 현 의장의 미국 경기에 대한 논란은 기본적으로 '기업이익(profit)'을 바라보는 입장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기업이익 증가율 둔화가 자본투자와 고용 감소를 초래해 경기침체(recession)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버냉키 의장은 기입이익 증가가 둔화되더라도 얼마든지 임금상승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인 만큼 침체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은 그린스펀의 '혜안'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코노미스트들은 버냉키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지난달 26일 홍콩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성연설을 통해 "미국 경제가 올해 안에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주된 근거는 기업이익 증가율 둔화였다. 지난 5년간 증가했던 기업이익이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S&P500지수를 구성하는 미 500대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작년 4분기 12.8%에 달하는 등 14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증가율은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올 1분기 증가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의 조사로는 500대 기업의 주당순이익 증가율은 작년 16.6%에서 올해 6.7%로 뚝 떨어질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인상 요구는 커지고 있다.

작년 4분기 단위노동비용은 3.4% 증가했다.

1년 전 동기의 1.5%에 비해 껑충 뛰었다.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금인상 요구마저 커지면 기업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투자 감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지고 결국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그린스펀은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버냉키의 시각은 다르다.

기업이익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뒷받침되는 한 기업이익 증가율 범위에서 임금인상이 이뤄지는 건 자연스럽다"며 "기업이익 증가율이 여전히 역사적 수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임금인상 요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2월15일 의회 증언). 임금인상 부담을 물건값 인상으로 전이하지 않고도 기업들이 자체 흡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만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은 낮으며 인플레이션 하의 경기침체란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1년 4분기 기업이익이 감소했지만 경기침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지난 5년간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자본투자에 나섰지만 차입보다는 이익금을 바탕으로 한 만큼 이익 둔화세를 어느 정도 견뎌낼 여력이 있다는 점도 버냉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인 전·현직 FRB 의장의 이런 시각차이는 자연스럽게 금리정책과도 연결된다.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그린스펀으로선 아무래도 금리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임금인상 요구를 중시하는 버냉키는 인플레이션에 주목한다.

틈만 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두 사람 중 누가 맞을지 예단할 수는 없다.

어쩌면 같은 시각인데 강조점을 달리하다보니 나타나는 의견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지표가 발표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익 증가율 둔화세가 드러나면 누가 진정한 경제대통령인지도 구별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