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밝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지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하게 장사꾼의 원칙으로 협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 것과 시한에 쫓기지 말 것,협상의 수준보다는 국익에 우선할 것 등 세 가지 지침도 표명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8차 실무협상이 끝나고 주요 쟁점별로 일괄타결을 시도하기 위한 워싱턴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체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협상 의지 후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지만 청와대와 협상팀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청와대 관계자는 "협상 지침을 공개석상에서 의도적으로 표시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측 협상팀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주면서 타결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확인시켜준 성격이 짙다는 의미다.

노 대통령이 "미국의 공세가 강경해진 반면 한국은 미국이 정한 기한 내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고 밝힌 것도 그만큼 우리 측 협상팀의 어깨를 덜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협상팀에 미국 측에 끌려다니지 말고 전적인 권한을 갖고 주도적으로 협상에 임하라는 격려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협상팀에 대한 격려와 함께 국내의 반 FTA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안보와 대외신인도,한·미 관계 등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라고 한 것도 협상팀에 힘을 실어주면서 동시에 경제외적 요인으로 '퍼주기식 협상'을 하지는 않는다는'국내용' 발언이기도 하다.

FTA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미 동맹에 금이 갈 수 있고,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 정부가 양보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협상 시한에 쫓기지 말라는 지침 역시 같은 맥락이다.

"빨리 진척될 수 있으면 바람직하지만 시간에 쫓겨 내용이 훼손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1년 전의 지침과 내용상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협상팀이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선 국내 정치적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 관철을 전제로 타결 노력에 매진할 수 있도록 '힘 실어주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도 이익이 되면 그런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며 타결 의지를 드러냈다.

또 "FTA 반대는 예측한 것이지만,예측의 수준을 크게 안 넘는다"고 밝힌 것도 FTA 타결과 국회비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찬반 여론이) 거의 더블스코어 아니냐"며 "지금 국회에 가면 비준안이 거부될 것 같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