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으로 휴가가던 프랑스인 발길 돌려

현대건설이 태안기업도시를 기획하며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곳 중 하나가 프랑스 남부의 해안도시 그랑모트다.

지중해 연안의 '랑독·루시옹 개발계획' 가운데 하나로 탄생한 그랑모트(150만평)는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4억유로(약 5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랑모트는 1960년대 프랑스인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대부분 스페인으로 향하던 시절,관광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과감히 추진해 성공한 관광도시의 대명사로 불리는 곳이다.

이후 프랑스인들의 발길은 그랑모트로 향했고 더 나아가 북유럽 관광객까지 흡수하는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랑모트는 반세기 전만하더라도 모기가 우글거리는 버려진 땅에 불과했다.

그랑모트 개발이 착수된 시기는 1959년으로 프랑스가 늘어나는 관광수지 적장 골머리를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스페인에 많은 수의 자국 관광객을 빼앗기게 되자 대대적인 지역균형개발 계획을 세웠다.

이후 '랑독·루시옹 개발계획'을 마련하고 그 첫 대상으로 프랑스는 소득수준이 낮았던 프랑스 남부 지역을 관광도시로 만들기로 했다.

프랑스 남부의 니스와 상트로페까지 연해 180km의 해안을 폭 20km로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과 49억유로(약 6조원)를 벌어들이는 랑독·루시옹 관광벨트지만 1963년 계획이 공개되자 여론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라며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격렬한 비난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묵묵히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4년 랑독·루시옹지역에서 처음 그랑모트라는 관광도시를 선보였다.

그랑모트는 사실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생겨날 수 없는 없었다.

프랑스는 국토개발특별법을 제정해 도시개발을 밀어붙였다.

개발본부가 랑독·루시옹 프로젝트의 중심이었다.

개발본부는 계획에 참여하는 모든 정부 부처와 지자체 및 기업 등에 업무협조와 조정을 담당했다.

수상직속이었기 때문에 각 부처의 위계질서와 상관없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고 개발본부에서 결정된 사항은 어떤 부처의 장관도 수정할 수 없도록 했다.

개발본부가 이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기에 중간에 정치권 등의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성공적인 도시 개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또 개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30여년을 충분히 기다려줬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개발계획을 지속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적 뒷받침은 대형 프로젝트의 성공의 초석이었다.

도로나 철도 등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 정부가 쏟은 관심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요인이다.

관광레저도시의 성패는 접근 용이성에 있는 만큼 도로망 확충은 필수적 요소였다.

피에르 라시느 당시 총책임자는 이 프로젝트의 개발과정을 소개한 저서에서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사전 토지규제가 절대 필요하고 다음으로는 1호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모든 기반시설의 설치과 정비가 끝나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줬고,도시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쳤을 때 시의 적절하게 관련 법규를 개정해 준 것도 기업들의 사업의지를 북돋워줬다.

적절한 상주인구도 필수적이다.

연중 경제활동이 가능해야 비수기의 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고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랑모트에는 8500여명(2004년 통계)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랑모트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는 수요를 무시한 개발 컨셉트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