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52)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현대그룹의 특징인 강인한 돌파력을 함께 갖춘 이미지로 비쳐진다.

임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드러움의 이면에 어려웠던 대내외 환경을 뚫고 3년 연속 전 계열사 흑자경영을 일궈낸 강인함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사실 현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현대그룹을 맡았다.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시숙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아파해야 했고, 주요 계열사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영 경험이 없는 주부로 흔들리는 현대그룹을 맡게 된 현 회장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조화된 경영스타일로 위기를 하나씩 극복해 나갔고, 언론은 이 과정에 주목했다.

'감성경영'이 대표적인 예다.

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적인 소회도 풀어내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남성 위주의 딱딱한 기업문화를 차츰 바꿔나갔다.

e메일의 내용은 민감한 경영권 분쟁에서부터 고 정 회장을 그리워하는 '사부곡(思夫曲)'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자신이 직접 쓴 성공 메시지를 담은 다이어리와 자녀 교육도서를 임직원에게 건네는가 하면, 임직원 가족에게 삼계탕과 목도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는 듯한 느낌으로 임직원을 챙긴 것이다.

이런 사실이 홍보팀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언론은 주요 기사로 다뤘고, 많은 국민은 현대그룹과 현 회장을 응원했다.

하지만 현 회장은 경영에 있어서는 냉철하고 강인한 최고경영자(CEO)로 돌변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대북송금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상선의 회계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윤리경영'을 선포하며 시장의 신뢰를 얻어나간 게 대표적인 예다.

이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3년 연속 전 계열사 흑자경영이란 결실을 맺었다.

현 회장은 최근 들어선 기자간담회 등 대외활동을 최소화하는 대신 현대건설 인수 준비 등 그룹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빈 자리는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과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등 전문경영인들이 대신하고 있다.

2002년 현대상선 사령탑에 앉으며 어려움을 겪던 회사를 정상화시킨 노 사장은 임직원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 역시 중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소상히 설명하는 편지를 홈페이지에 띄워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북핵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윤 사장은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렴,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불수도북 산행(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쉬지 않고 하루에 등반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은 "임직원들의 체력 증진과 교육을 통한 실력 배양 등 '보이지 않는 자산'이 현대증권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하는 독특한 CEO다.

각사 홍보팀은 CEO들의 경영능력과 함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