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얼마 전 "회사 식구 중에 '기러기 아빠'가 몇 명인지 보고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한 시사주간지에서 '기러기 아빠'의 애환 소식을 접하고, 현대판 이산가족의 고통을 겪고 있을 한화 직원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곧바로 임원 4명을 포함해 해외에 연고가 없는 순수 '기러기 아빠' 24명에게 특별 휴가와 왕복 항공 경비를 지원했다.
김 회장 특유의 '감동경영'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한때 식스시그마를 꽃같이 형상화한 문양의 넥타이를 즐겨 맸다.
넥타이 이름도 이른바 '식스시그마 넥타이'다.

식스시그마운동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체 주문해 사용한 것. 정해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아예 비행기가 그려진 넥타이만 찾는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감동경영, 넥타이를 통한 이미지 관리 등의 공통점은? 바로 PI(최고경영자 이미지 통합·President Identity)를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PI는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와 기업의 이미지를 통일시키는 작업이다.
이미지 관리 수단은 옷차림뿐 아니라 설득이나 요구 등의 대화법, 매너, 사진, 음식, 애창곡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CEO의 움직임이 곧 기업의 성과로 직결되는 요즘엔 PI 자체가 주요 경영전략이 되고 있다.

당연스레 최근 국내 대기업은 '회장님'이나 '사장님'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가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PI 전담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외부 홍보대행사로부터 컨설팅까지 받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PI를 위해 비서팀과 홍보팀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창조경영 등의 경영화두 제시도 이 회장의 PI와 연결된다.

최근엔 국가 경제와 글로벌 경영에 이 회장의 이미지를 연결짓는 PI가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리더로서 뿐만 아니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전문경영인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도 글로벌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PI는 현장경영을 강조하는 데 있다.

정 회장이 항상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점퍼 차림에 안전모를 착용하는 경우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현대·기아차그룹의 PI 전략인 셈. 정 회장은 최근 들어 현장경영 외에도 국내 자동차산업을 조망하는 전략가로서의 이미지도 만들어내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그룹 전략회의나 임직원들과 만날 때 넥타이 차림보다는 노타이 차림으로 나선다.

활동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구 회장은 특히 자신의 경영철학인 '정도경영'을 강조하고 R&D(연구·개발)의 중요성,고객만족 경영,인재 육성 등에 집중하는 총수로서의 이미지도 구축하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행복경영' 이념과 글로벌기업 도약 의지를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행복 날개'로 형상화된 새 로고도 최 회장의 행복경영에 대한 의지와 연결된다.

특히 SK그룹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최 회장의 사회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 회장이 직접 연탄을 배달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쿠키를 굽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소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헌철 SK㈜ 사장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역시 사회공헌 이미지 구축에 힘을 보태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대내외적으로 '준비된 경영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LG에서 계열분리하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경영활동을 지원하면서 '은둔의 경영자'로 만족했던 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미스터 오일(Mr. Oil)'로 통하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경우 글로벌 경영 행보와 에너지 전문가로서의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실무형 컨셉트를 강조하고 있다.

격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고,결과보다는 과정에 무게를 두는 조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홍보팀 역시 테마를 정해 PI활동을 전개하는 '기획 홍보'보다는 조 회장의 대내외 활동을 가감없이 홍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부지런하고 매너있는 총수로 유명하다.

왕성한 대외 활동과 함께 기업 홍보에도 적극적이기 때문.박 회장은 그룹의 주요 사안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자청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박 회장이 스스로 PI 전략을 짜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다국적 컨설팅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제 PI는 회장이나 CEO 개인의 홍보 문제가 아니라,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우수인재를 끌어들이는 핵심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