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샌드위치 위기론'이 화제다. 우리 경제가 가까이는 일본과 중국,크게는 선진국과 후발국 중간에 끼여 있는 형국을 빗댄 것이다. 표현만 다를 뿐 그 전에 나왔던 '호두 까는 기계에 끼여 있는 호두와 같다(nutcracked)'는 비유와 그 의미는 똑같다. 그런데도 왜 지금 그 위기감이 더 느껴지는 것일까.

분업구조 측면에서 볼 때 이런 구도가 영원히 지속될 수만 있다면 그렇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고급기술의 공급 역할을 하는 일본,넓은 시장을 가진 중국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문제는 중간자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고,끼여 있는 호두나 샌드위치 자리마저 뒤쫓아 오는 누군가에게 내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생존 방법은 위로 치고올라가는 것밖에 없는 셈이다.

흔히 선진국 기업들의 수익구조를 '스마일 커브(smile curve)'라고 말한다. 기업 활동을 연구개발,제조,서비스(마케팅 물류 등) 세 가지로 나누면 수익구조가 중간에 있는 제조 중심이 아닌 양쪽 극단에 있는 연구개발과 서비스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을 가리킨다.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한데 이런 구조 전환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게 고민이다.

1990년대 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들의 투자패턴을 보면 설비투자가 먼저였고 연구개발투자는 이를 뒤따라갔다. 기술도입을 통해 설비투자를 한 다음 연구개발 측면에서 학습을 해 나간 것이다. 이것은 적중했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패턴이 통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부터 기업들은 연구개발투자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새로운 설비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투자패턴이 과거와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투자가 과거같지 않은 것은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90년대 이후 IT산업이었다. 여기서 연구개발투자를 리드했고 이는 설비투자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IT산업마저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구개발투자의 질적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사실 연구개발투자라고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스펙트럼(spectrum)'은 넓다. 기초와 원천이 있는가 하면,응용·개발이 있고,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말 그대로의 기술혁신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연구개발투자는 정부도 기업도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응용과 개발 중심이었다. 적당한 리스크,적당한 기간을 선호하는 것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파급력 있는 소위 '돌파형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새로운 연구개발투자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기초·원천과 기술혁신 양쪽 극단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IT산업은 물론이고 다른 산업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리스크'다. 기초·원천의 경우 상당한 기술적 리스크를,그리고 기술혁신의 경우 상당한 상업적 리스크를 각각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릴 수 있다.

기업인들이 말하는 위기론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을 기업더러 다 감당하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과소투자가 불가피하다. 정부가 위기론을 색안경 끼고 볼 일이 결코 아닌 이유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