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중관춘에 자리잡고 있는 R대학. 이 학교 게시판에 '재정과 금융의 분리로 학교 골병든다'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걸려 있다. 학술성격의 글이 아닌 학생 자신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글이었다.

대자보가 나붙은 배경은 이렇다. 이 대학은 학생 한 명당 1년에 5000∼8000위안(약 60만~96만원) 정도의 학비를 받는다. 중국의 고급 직장인들이 월급을 1년 동안 꼬박 모아야 할 큰 돈이다. 그러나 이 돈 중 학생을 위해 쓰여지는 액수는 아주 적다. 학교가 은행이자로만 1년에 3억위안(한화 360억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은행,학교 등 '3자 유착'이 낳은 결과였다. 그동안 학교는 필요 경비를 모두 은행에서 '타다' 썼다. 1999년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대학들은 강의실과 기숙사 등을 계속 지어야 했고 돈은 모조리 은행에서 빌렸다. 국가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은행은 마지못해 언제 받을 지도 모를 돈을 학교에 빌려주었다. 대학에는 빚이 쌓여갔고,은행에는 부실채권이 쌓여간 것이다.

대학은 그래도 공공 성격이 큰 집단이라는 점에서 봐줄 만하다. 그동안 부실 국유기업은 은행돈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촌으로 투입되는 은행돈은 마를 날이 없었다. 모럴해저드는 확산됐고,은행은 부실채권을 잔뜩 떠안고 있다.

이 같은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중국 금융당국이 각 상업은행에 대해 부실채권율을 내리라고 압박을 가하면서 각 은행은 학교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고 있다. 인민대학 게시판에 대자보가 나붙은 이유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은행에 국가 자금을 투입하고,부실채권정리기구를 통해 클린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상 국유기업 학교 등에 대한 국가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중국이 금리나 환율결정을 시장기능에 맡기라는 미국 요구를 거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과 재정을 분리하면 통제력이 상실되고,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부패와 부실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중국정부가 어떤 묘수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