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경제의 혈액인 돈이 안 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때문인지 최근 들어서는 각종 위기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면 한 나라 경제에도 썩어 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있는 계층과 대기업보다는 서민층과 자영업자,중소기업이 쓰러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론적으로 특정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지표가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다.

통화유통 속도란 일정 기간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잘 유통되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의 경우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화유통 속도를 보면 2000년의 0.7에서 최근에는 0.5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 나라의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 승수다.

통화 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고성능 화폐·high-powered money)로 나눈 수치다.

한 나라의 통화 승수는 그 나라 국민의 현금보유 성향과 예금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그리고 본원 통화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처럼 본원 통화 공급이 일정할 때 현금보유 성향과 지급준비율이 작을수록 통화 승수는 커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우리의 통화 승수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콜금리 인상 대신 지급준비율을 올린 이후부터 통화승수가 떨어지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처럼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가 떨어지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실물경제에 돈이 유입되지 않아 통화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 종전 배웠던 경제 이론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상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경제학의 혼돈(chaos of economics)' 시대다.

돈이 안 도는 현상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위기론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최근 거론되는 위기론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하나는 우리 국민이 미래에 먹고살 '성장대안 부재론'이다.

일본 등 선진국은 견제하고 중국 등 후발국은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도 나돈다.

이 밖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꼭 10년째를 맞아 위기가 반복된다는 '외환위기 10년 주기설'도 가세하고 있다.

증시가 한 나라 경제의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최근처럼 돈이 안 돌고 위기론이 고개를 들면 주가는 안 좋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올 2월 말 이후 중국의 긴축정책,일본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 우려,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과 같은 커다란 악재가 잇달아 발생했음에도 불구,국내 증시는 잘 버티고 있다.

증시 주변의 유동성이 풍부하고 주식을 저축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며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문화가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시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증시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돈이 돌아 생기를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위기론도 불식될 수 있다. 여러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최근 상황이 현 정부와 정책수용층 간 신뢰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방안이지 않나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