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尙勳 < 인터브랜드 사장 spark@interbrand.co.kr >

대학 동창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에 들어선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는데,그날은 특별히 지도 교수님이셨고 최근 퇴임하신 은사님께서 격려사를 해 주셨다.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중에 특히 "여러분도 이제 몇 년 안 남았으니 퇴직 후를 준비하시오"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원래 나이 들어서 참석하는 동창회에는 잘나가는 동기들만 나온다고들 하는데,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서는 의미 있는 것 같았다.

글로벌 기업에는 대부분 석세션 플랜(Succession Plan)이 있다.

다음 경영 후계자를 미리 정해 놓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현재 경영자의 임기가 조만간 끝날 수도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커리어의 끝자락에 온 사람들은 이를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자신은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바쁜 실무를 핑계로 시간을 보내다가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공식적인 커리어를 끝마치게 된다.

똑똑한 사람은 그때 그때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구체화해 명확한 방향성을 잡고 기업을 경영하며 경력을 관리한다.

미국의 한 젊은 최고경영자(CEO)는 경력이 10년이 채 되기도 전인 30대 초반에 연봉 100만달러 이상을 받는 대기업 전문경영인이 돼서 화제를 모았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책임을 맡았을 때 그 일을'1년 동안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1년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두 가지를 했습니다." 그는 회사를 몇 번 옮겼지만 매년 승진했고,아주 빠르게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를 중용했던 기업들은 그가 비록 한 위치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은 충분히 다 해냈다는 평을 내렸다.

미국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마케팅 책임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최고경영자는 4년,마케팅 책임자는 2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어딘가에 머무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의 삶도,현재의 지위도,직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알고 보면 그리 길지 않다.

한 번쯤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계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머물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구체화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가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때 우리의 현재를 더 소중하게 느끼고,삶에 대해 겸손해지며,주위 사람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