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孝鍾 < 서울대 교수·정치학 >

그동안 노무현정부가 내놓는 아젠다마다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사학법(私學法) 개정이나 국가보안법도 그랬고 과거사법이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문제도 그랬다. 그래서 사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항상 시끄러웠다. 정부가 내놓는 논리를 보면 정연하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설득이 되지 않고 또 다른 논리를 편다. 이렇게 논리가 부딪치면 무엇으로 해결하나. 실로 난감할 뿐이다. 문제는 논리로는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면,반대로 도둑질을 금지하는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로빈후드나 홍길동을 보면 도둑질이 정당화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 있는 사람의 물건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어떻게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재산의 의미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려한다. 재산권 개념이 무너지면,교환 등 사람들 사이에 질서 있는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에 또다시 불거진 부동산 세금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입장은 논리적이다. 아파트 값이 올랐으면 그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 비하면 그렇게 비싼 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비싸다고 생각하면 비싼 집을 팔고 보다 싼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논리도 성립한다. 비싼 아파트라고 하나 그 이익이 실현된 것도 아니고,한국과는 역사와 여건이 전혀 다른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억지논리라는 것이다. 또 생활형편이 나아진 것도 없는데 이전(以前)에 비해 서너 배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논리와 반론은 끝이 없고 결국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자기정당화의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다못해 어린애를 유괴한 사람도 자기정당화의 논리가 가능하다. 왜 조심하지 않고 자기같은 낯선 사람의 말을 듣고 차에 올라 타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탓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다. 그 논리를 펴는 사람의 가치관(價値觀)이 더 중요하다. 그 가치관이 올바르냐,가치관이 올바로 형성됐느냐 하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도둑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촛불로 성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촛대를 훔쳐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좋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없다. 세금이란 부자를 혼내주거나 높은 부동산가격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가치관이다. 또 세금을 통해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을 싸우게 만드는 궁리를 한다면,그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다. "부동산 세가 아무리 높아도 좋으니 그런 세금을 한번 내보았으면 한이 없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라고 하면서 정당화를 한다면,그것도 문제다.

사실 출발점을 정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돈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감정적인 것이지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것이 비(非)논리적인 것처럼,부자를 보고 미워하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올바른 가치관 설정에는 문(文)·사(史)·철(哲)의 교양이 절대적이다. 집안의 영향,자랄 때의 체험도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지금 노 정부 아래에서 부동산 세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크게 잘못됐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악 소리 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투기꾼도 아닌 사람한테 악소리를 내게 하면 어떻게 하나. 또 아파트가격이 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크게 올랐는데,그 오른 집에 사는 봉급생활자나 은퇴자가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국민들은 과연 정부에 세든 것처럼 살아야 할까.

정부가 말하는 형평성도 좋고 균형발전도 좋다. 논리는 좋은데,부족한 것이 있다. 사람들 마음을 모으기보다 오로지 사람들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철학에 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정당화의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아니라 누구도 그 정도 논리는 세울 수 있다. 다만 국리민복에 힘써야 할 정부가 '순리(順理)'보다 '권도(權道)'로 밀어붙이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