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宇澤 < 한림대 교수·경제학 >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230년 전 왜 어떤 나라는 풍요를 누리고 다른 나라들은 가난한지를 신대륙 식민지들의 사례를 가지고 설명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오늘의 미국)가 다른 어떤 나라의 식민지들보다도 번영했는데,그것이 좋은 땅이 풍부하다는 외부 여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라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에 비할 바가 못 되고,프랑스 식민지에 비해서도 그리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이유로 영국 식민지의 토지제도가 다른 세 나라의 식민지 제도에 비해 그 땅을 개간(開墾)하고 경작하기에 유리했다는 것,무겁지 않은 세금,그리고 당시 관행으로 식민종주국에만 유리하게 운영되던 독점무역체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덜 가혹했었다는,다시 말해 보다 자유로운 무역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경제성장에서의 제도의 중요성에 주목한 애덤 스미스의 통찰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그래서 1993년 노벨경제학상이 제도주의적 관점을 경제사의 이론에 적용한 더글러스 노스에게 주어졌다. 노스가 제도의 역할을 보여 주기 위해 즐겨 사용한 사례는 애덤 스미스가 비교한 식민지들이 아니라 그 종주국들이다. 성공 사례로서의 영국 네덜란드와 그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던 스페인과 프랑스였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떤 제도를 만들고 있는가?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바른 유인구조가 내재된 좋은 제도를 후손들에게 물려준 미국의 조상들이 고안한 것과 같은 제도를 만들고 있는지,아니면 자신들은 항해기술을 발전시키고 모험정신으로 부(富)를 축적했지만 그 성공을 계속할 수 있는 바른 동기부여 기제(機制)가 내재된 제도를 물려주지 못한 이베리아반도와 라틴아메리카의 조상들이 추구한 것과 같은 제도를 만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이해가 걸린 제도는 처음 만들 때 잘 만들어야지 자칫 잘못 만들어 그 부작용이 드러날 때는 이미 고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좋은 예를 우리는 요즈음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개혁 시도에서 볼 수 있다. 과도한 복지비용과 노동비용으로 야기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부의 시도들이 수혜자들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돼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금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고 있다. 연금기금이 바닥나는 날짜를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한 지가 여러 해가 됐지만 파산 날짜를 조금 연기시키는 정도의 개혁도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한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 민생법안이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제도 마련이다 하면서 많은 경제 관련 제도의 틀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그 대부분이 우리 경제의 현안으로 떠오르는 문제가 있으면 그에 대한 대증요법(對症療法) 차원의 해결책을 법제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산율 저하가 문제로 떠오르면 정부 예산으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인구 고령화로 노인들의 복지문제가 우려되면 정부가 노인요양 시설을 확대하고 노인수발제도를 도입하고,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 공공부문에 그 생산성이 의심되는 일자리를 만든다고 나서는 식이다. 물론 그 재원(財源)은 세금일 수밖에 없으니,국민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고 정부는 비대해진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대증요법으로 일관한 정책의 좋은 예가 부동산 정책과 관련 입법일 것이다.

세금폭탄,원가 공개,분양가 상한제 등의 정책을 보면 그 장기 효과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 같은 접근방식의 저변에 깔린 전제는 좋은 의도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잘못된 확신과,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정부의 힘에 대한 과신,그리고 경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경제관이다. 그 이유가 무지이든,계산된 정치적 목적에서이든 간에 정부가 잘못된 정책 선택을 하고 있다면 이를 감시하고 막을 책임은 국민들의 몫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방관하는 사이 나라의 경제가 병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