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정면 비판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자리에서다.

작심한듯 발언의 강도도 셌다.

노 대통령은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흔드는 것으로 정치인 자격이 없다"면서 '보따리 장수'라는 원색적인 용어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대선후보로는 부적합하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범여권과 손 전 지사 간 연대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 "정치인 자격 없다"

노 대통령은 "탈당을 하든 입당을 하든 평상시의 소신을 갖고 해야 한다"며 "자기가 후보가 되기 위해 당을 쪼개고,만들고,탈당하고,입당하고 이런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에서 흔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 정치에서 진보나 보수와 같은 노선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원칙이란 가치가 있다"고 전제한 뒤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 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손 전 지사를 겨냥했다. 노 대통령은 "너도 나도 진보를 얘기하고,개혁을 얘기하고,새로운 정치를 얘기하지만 원칙을 지킬 줄 모르면 그 정치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며 "보따리 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여론이 팽팽한 상황에서 탈당명분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고 건 전 총리가 통합신당을 위한 원탁회의를 구성하겠다고 공언한 직후 "고 건 총리의 기용은 실패한 인사"로 규정,고 전 총리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겼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손 전 지사를 범여권 대선후보로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손 전 지사와의 연대를 위해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손학규 "노 대통령이 극복 대상"

손 전 지사는 발끈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탈당해서 새 당을 만든 분인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나"며 "대통령이 내가 말한 무능한 진보의 대표"라고 반박했다.

또 "노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의 극복 대상"이라며 "정치평론을 그만하고,민생 걱정을 진지하게 해줬으면 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열린우리당의 추가 탈당을 막기 위한 내부 단속용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략기획위원장은 "고 전 총리와는 달리 '노무현 디스카운트'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통합신당모임 노웅래 의원은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측면 지원했다.

이심기/노경목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