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기업들이 올 주주총회에서 잇달아 경영권 방어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사의 선임과 해임을 까다롭게 하는 '초다수결의제'와 이사 해임시 퇴직금 외에 거액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황금낙하산제' 등을 새롭게 정관에 추가한 것이다.

실적과 기업내용이 좋은 우량기업이 경영권 안정을 위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실 기업의 경우 회사를 망가뜨린 경영진의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들고 개인 잇속만 챙기게 하는 등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적 부진해도 경영권은 강화

20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코다코 오디티 고제 이화전기공업 등이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제 등 경영권 방어책을 올 주총 안건에 포함시켰다.

이화전기공업은 오는 23일 주총에서 '이사 해임시 출석 주주 의결권의 80% 이상으로 하되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초다수결의제를 정관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28일 주총이 열리는 오디티는 "이사가 적대적 M&A로 해임될 때 대표이사에게 퇴직금 외 별도로 50억원,임원에게 30억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황금낙하산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고제와 코다코도 초다수결의제와 황금낙하산을 주총 안건에 넣었다.

라이브플렉스도너츠미디어(옛 팝콘필름)는 앞서 지난달 16일 주총에서 이사 해임을 어렵게 한 초다수 결의제를 도입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오디티는 작년 12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이화전기공업도 39억원 적자를 지속했다.

도너츠미디어와 고제의 적자 규모는 각각 250억원,306억원에 달했다.

이 밖에 코다코와 한올제약은 지난해 흑자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주주 모럴 해저드 논란

업계에서는 부실 기업들이 사실상 적대적 M&A를 불가능하게 하는 대책을 도입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주주가 실적 개선은 뒷전이고 기업을 '사유화'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한 상장사는 사실상 대주주가 정한 곳과만 M&A 협상이 가능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사회도 대주주가 장악,경영부실에 대한 견제책도 사라진 셈이다.

이에 따라 경영권 방어책이 부실기업 대주주의 이익만 옹호하는 철밥통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도너츠미디어와 고제는 지난해 이후 최대주주가 세 번이나 바뀔 정도로 경영이 불안정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책은 원래 우량기업이 경영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라며 "최근 일부 부실기업이 이를 도입해 원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