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수 개월 내에 핵시설을 불능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에 테러 지원국 해제를 서두를 것을 요구했다.

남북한과 미·중·일·러 6개국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이틀째 북핵 회담을 열고 양측이 다음 달 중순 이후 각각 추진해야 할 핵시설 불능화와 에너지 지원 문제를 토의했다.

북한은 불능화 이행을 테러지원국 해제와 연계할 움직임이다.

◆힐,"외무장관회담 4월 희망"

천영우 우리 측 회담대표는 영변 원자로 등 북한의 핵시설을 완전히 못쓰게 하기 위한 불능화 목표 시점에 대해 "북한은 수개월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 5개국이 북한에 불능화 대가로 주기로 한 중유가 100만t 상당인 반면 북한의 수용 능력이 월 5만t에 불과해 기술적인 문제가 대두됐다.

크리스토퍼 힐 미측 대표는 "비핵화의 이정표와 중유 지원의 이정표를 설정해 이를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에 2·13합의대로 4월 중순까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한 후 바로 불능화 절차를 시작할 것을 재촉했다.

다른 5개국에는 6자 외무장관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힐 차관보는 "외무장관 회담은 4월 개최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북,테러지원국 해제-불능화 연계

핵시설 폐쇄를 방코델타아시아(BDA) 동결 해제와 연계했던 북한은 2단계 조치인 불능화도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연계할 태세다.

미국은 2·13합의에서 북한과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한다"고 약속했다.

중국의 외교 소식통은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이 세계은행 등에서 인프라 투자를 확보하고 정상적인 국제 교역을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라며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에서 빼줄 때까지 불능화 작업을 완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조선의 비핵화 공약만 일방적으로 논의될 수 없다"며 테러지원국 해제를 촉구했다.

◆핵연료봉 제3국 이전 추진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북핵 협상에 부담을 주고 있다.

힐 미국 대표가 "북한은 대량 살상무기와 경제난에서 기인한 많은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북한은 일본을 아예 상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몇몇 미국 의원들을 후원하고 있다"며 "테러지원국 해제에 일본의 반대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미 등 5개국은 북한에 핵시설 불능화의 첫 단계로 영변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꺼낸 후 제3국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94년 제네바합의 때 북한이 연료봉까지 뺐다가 다시 장착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이은철 교수는 "불능화가 성공할 수 있느냐 여부는 결국 북한이 궁극적으로 해체까지 갈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