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잔고증명 빌미 대포통장으로 21억 `꿀꺽'…교도소서 수법 연구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1일 사채업자들의 돈을 가로챈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정모(41)씨와 정씨의 형(4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조모(47)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형제 등은 2004년 5월부터 최근까지 신모(53)씨 등 서울 명동 일대 사채업자 7명에게 접근, 통장 잔고증명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린 뒤 빼돌리는 수법으로 21억5천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사채업자들이 통장 잔고증명용으로 1억원당 22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하루동안 통장에 돈을 넣었다 빼는 점에 착안, 부동산 입찰 때문에 통장 잔고금액을 높여야 한다며 사채업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채업자들이 돈을 고객의 통장에 입금시킨 뒤 고객이 돈을 몰래 인출하지 못하도록 인터넷뱅킹과 폰뱅킹을 해지하고 통장과 인감을 보관해 오는데 정씨 형제는 사채업자들이 미처 모르는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 은행의 경우 A, B통장을 묶어서 개인사업자 인터넷뱅킹을 신청하면 B통장의 인터넷뱅킹을 해지해도 A통장의 인터넷뱅킹으로 B통장의 예금액까지 입출금할 수 있는 허점을 안고 있다.

정씨 등은 범행에 앞서 서울 송파구 방이동 등에 소액대출 사무실을 차려놓고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에 "통장을 빌려주면 은행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통장 100여개를 끌어모은 뒤 `대포통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경찰에서 "사기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할 때 `명동 사채업의 흐름'이라는 책을 보며 사기수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금액 중 7억원을 회수했으며 여죄와 공범이 더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 형제에게 4억5천만원을 사기당한 사채업자 최모(52)씨 부부는 직접 피의자들을 잡으러 다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두 명 모두 발목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며 "정씨 형제는 사채업자들을 속이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