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와 보니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제조업체가 해외 시장을 뛰어 다녔던 지난 수십년 동안 금융사들이 얼마나 국내에 안주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시장은 국내 증권사와 운용사에 여전히 기회의 땅입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싱가포르 법인 총괄책임자인 김미섭 이사의 말이다.

김 이사의 말처럼 올해 아시아를 바라보는 증권업계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급팽창하는 아시아 금융 시장에서 수익원을 발굴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마저 배어 나온다.

◆해외로 눈돌리는 증권·운용사들

증권사 대표들은 연초 신년사에서 한결같이 '해외 시장 공략'을 첫 번째 화두로 내세웠다.

'브로커(위탁매매)'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도태할 수 밖에 없다는 절실함이 묻어 있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현재 국내 증권사(운용사 포함)의 해외 지점과 현지 사무소는 15개사 38곳에 이른다.

홍콩과 뉴욕 런던 등 기존 지점과 사무소 외에 증권사들이 신규 해외 거점으로 가장 많이 선택한 곳은 베트남과 중국이다.

한국투신운용과 미래에셋 계열의 맵스자산운용에 이어 동양종금증권이 지난해 말 베트남 호찌민에 현지 사무소를 설립했으며 브릿지증권은 골든브릿지 베트남을 세웠다.

미래에셋증권은 맵스자산운용 사무소를 확대, 합작 증권사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인근 캄보디아에는 동양종금증권이 올초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첫발을 내디딘 데 이어 메리츠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이 진출 채비를 꾸리고 있다.

중국은 이미 국내 증권사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화증권 등이 사무소를 개소했으며 미래에셋증권은 5월께 베이징 사무소를 세울 방침이다.

현지 증권사와의 제휴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삼성증권이 중신증권, 한국증권은 궈타이쥐안안증권, 한화증권은 하이퉁증권, 굿모닝신한증권은 선인완궈증권과 각각 제휴를 맺는 등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개발에서 직접투자까지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투자 중개나 인수 주선 업무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해외 펀드나 부동산 투자,자원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를 통해 기반을 닦은 후 IB(투자은행)의 핵심 분야인 M&A(인수·합병)와 해외 직접투자, IPO(기업공개)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4곳의 증권사들은 베트남 관련 펀드 판매를 위해 중소형 상장회사와 IPO 예정 종목, 부동산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한국증권의 경우 베트남 투자 규모가 5000여억원에 이른다.

미래에셋증권은 비교적 일찍 자기자본투자(PI)에 나섰다.

지난해 홍콩 소재 회사에 1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사들였다.

또 맵스자산운용의 사모부동산펀드에 2800억원을 투입, 상하이 푸둥지구에 건설 중인 업무용 빌딩을 매입했다.

현대증권은 중국 시장에서 부실채권 기초 ABS(자산담보부증권) 발행에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투자에도 나서기 시작해 상하이와 카자흐스탄 등의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증권은 아시아 각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단을 조성해 한국 기업을 유치하고 있으며 재개발사업에 참여 중이다.

인도 카자흐스탄 리비아 등에서는 자원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밖에 동양종금증권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부동산개발 사업을 벌일 방침이다.

우리투자증권은 베트남에서 현지 국영기업 지분 투자와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2000억원가량의 실탄을 마련하고 자기자본투자를 위한 대상을 물색 중이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이 시장을 장악한 선진국과는 달리 이머징 마켓은 우리의 자원과 인력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시장 선점 차원에서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