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현재 형집행정지 상태로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 내 심장혈관 병동에 입원해 있다.

가끔 주말에 방배동 자택을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병실을 지킨다.

주치의인 정남식 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는 "협심증에 따른 흉통이 있는 데다 심근경색증이 유발될 수 있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지검도 이 같은 소견을 받아들여 최근 형집행정지 기간을 연장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김 전 회장은 얼핏 봐도 노약한 병자다.

보청기를 착용해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백내장으로 눈의 피로가 쉽게 느껴진다고 한다.

오랜 해외 도피생활과 귀국 후 재판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 탓인지 세월의 무게가 얼굴 표정에 가득히 담겨 있다.

몸보다 마음의 상처는 훨씬 깊다.

한때 국내 2대 그룹 총수로서,세계 경영을 주도했던 사업가로서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10만여명의 대우 가족들이 마음에 걸린다.

대우 사태로 20여명의 경영진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부하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조금이라도 찾아줄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뚫고 나갈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며 모질게 사장들을 몰아붙였던 자신감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가능하면 재계 인사들과 친인척의 병문안도 사절한다.

사람과 만나 현안을 얘기하는 걸 즐기던 김 회장이었지만 이제는 혼자 사색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그래도 세상사가 궁금하면 신문도 보고 TV 뉴스도 본다.

한국이 조선 수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상하이GM이 중국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자동차로 세계 경영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야심이 꺾인 게 한없이 아쉬워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단다.

상하이GM은 대우자동차가 부품을 대주던 회사였다.

외환위기로 자신의 꿈이 물거품처럼 무너졌다는 생각을 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자신이 더 원망스럽다.

외환위기가 터진 게 한없이 아쉬워서인지 요즘에는 이규성 전 경제부총리가 작년 말 출간한 '한국의 외환위기'(박영사 간)를 읽고 있다.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면 자신이 전 세계에 구축한 네트워크와 세계 경영의 경험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업가로선 실패했지만 인간 김우중으로서 명예라도 회복하고 싶은 심정일 게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