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취직이 안 된다고 힘들어 하지만,환경 탓만 해서는 안됩니다. 역경이야말로 가장 큰 스승이자 성공의 원동력이지요."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는 세계적 바이올린 제작 명장(名匠) 진창현씨(78). 자서전 '천상의 바이올린'(에이지21 펴냄) 출간 기념으로 21일 고국을 찾은 그는 세계에서 5명밖에 없는 '무감사(無鑑査) 마스터메이커'로 성공하기까지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역경'이었다고 말한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분뇨 리어카를 끌며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했지만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교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고난을 새로운 희망의 계기로 바꾸며 끝없이 인생을 개척했다.

"어느날 '바이올린의 신비'라는 강연회에서 '바이올린의 명기'라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재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쳐드는 것을 느꼈죠. '불가능'이라는 말이 도전정신을 일깨워준 겁니다."

그러나 재일한국인을 제자로 받아들이려는 바이올린 제작자는 없었고 바이올린 공장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공장 근처에서 막노동을 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1976년 미국 '국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6개 부문 중 5개 부문상을 휩쓸며 금메달을 땄고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인생역정은 일본인들에게도 귀감이 돼 TV드라마와 책,만화로 선보였고 내년부터는 일본 고교 2학년 영어교과서에 실릴 예정이다. "교과서를 만드는 미쓰토모(三友)출판사에서 알려왔는데 교과서에 한국인이 실리는 건 최초라는군요."

그는 "명기란 음이 맑고 약간 높은 듯한 소리를 내며 가볍고 탄력감이 느껴지는 악기"라며 "한국인처럼 우뇌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유리하지만 노력에 따라 누구에게든 명장의 길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올린에는 물소리,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선율이 실려야 한다며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자주 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119개국을 다녔고 얼마전에는 남극까지 갔다왔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150만엔(약 1200만원),첼로는 300만엔(2400만원) 이상에 팔린다. 제작 기간은 바이올린의 경우 한 달 정도. 지금까지 그가 만든 악기는 600여개. 세 아들도 바이올린과 첼로,활 제작 등으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그는 22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역경을 희망으로 바꾼 명장의 도전과 성취'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도 갖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