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올 1분기 소매경기가 2년여 만에 최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백화점 할인점 슈퍼마켓 등 전국 905개 소매유통 업체를 대상으로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1분기 실적치가 75로 집계됐다고 21일 발표했다.

실적치가 80 이하로 내려가기는 2004년 4분기(실적치 60) 이후 처음이다.

2분기 전망치도 93으로 세 분기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RBSI는 소매유통 업체들의 현장 체감경기를 수치화한 지수로 100 미만이면 해당 분기의 경기가 전분기보다 나빠졌다고 응답한 업체가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1분기 소매유통 경기 조사에서는 부동산 관련 세금이 늘어나면서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백화점의 매출 실적(48)이 급락했다.

지난해 4분기의 백화점 실적치가 전분기 대비 '152'였을 정도로 호황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객수 줄어드는 슈퍼마켓·편의점

상의 조사 결과 소매 업태별로는 전자상거래(117)를 제외하고는 대형마트(99),백화점(98),슈퍼마켓(73),편의점(84) 등 전 업태가 기준치인 100을 밑돌았다.

특히 서민 밀착형 유통업태인 슈퍼마켓과 편의점이 냉랭해진 경기 흐름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84개 대형 슈퍼마켓(SSM)을 운영하고 있는 GS수퍼마켓의 지난 1,2월 매출 신장률은 3.2%로 작년 4분기(5.2%)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작년 평균 2.5% 이상의 신장률을 보였던 편의점 GS25의 매출도 올 들어서는 1.0%대로 하락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1,2월 내장 고객 수도 2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대형 할인점과 SSM의 출점 경쟁도 주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2분기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의 조사에서 2분기 소매경기가 1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 업체가 36.4%로 경기 호전을 예상한 업체(23.0%)보다 많았다.

경기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40.6%였다.

◆중산층 이탈에 벌벌 떠는 백화점

지난 1,2월 주요 백화점들의 누적 매출 신장률은 작년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롯데백화점 2.3%,현대백화점 4.0%,갤러리아백화점 4%의 신장률을 보였다.

갤러리아의 경우 지난해 4분기까지는 분기 평균 6.6% 이상 성장했는데 작년 4분기 5.4%로 주춤한 데 이어 1,2월 누적 성장률이 처음 5% 밑으로 떨어졌다.

백화점 관계자들이 진짜로 우려하는 것은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중산층 고객 이탈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각 백화점 VIP 고객들의 씀씀이는 여전하다.

갤러리아백화점의 VIP 고객 매출은 올 들어서도 20% 이상 늘어났다.

현대백화점의 명품 매출도 14% 증가했다.

이런 추세와 달리 백화점 고객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이달 들어 갤러리아백화점의 전체 방문 고객 수는 3% 줄어들었다.

이들의 평균 구매 금액은 6만원 이하.한 번 방문해 주로 식품관에서 식사 등 2만원 미만을 쓰고 가는 고객들도 2% 감소했다.

소비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 소비자의 이탈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품 기획전만 북적이는 대형마트

소비심리 악화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형마트의 매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지난 1,2월 매출 신장률이 각각 5.3%,5.2%로 작년 평균(3% 선)보다 높았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제품 가격에 부담을 느낀 중산층들이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면서 반사이익을 누리는 셈이다.

하지만 쇼핑객들의 소비패턴을 들여다 보면 불안심리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우선 대형마트마다 '공동구매족'들이 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과일이나 생필품을 구입할 때 혼자 와서 사는 대신 동네 아줌마들이 필요 물건을 일괄 구매해 나눠쓰고 있는 것.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지선씨(37)는 "가까운 곳에서 대충 물건을 사는 주부들이 거의 없다"며 "멀더라도 싼 곳에서 과일이나 호일,심지어 고무장갑까지 한꺼번에 사서 돈을 아끼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에서 특정 제품의 가격을 대폭 깎아주는 '행사 상품' 매출도 올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통상 가격 할인이나 덤 상품을 주는 행사 상품 매출은 30% 정도 증가했으나 올 들어서는 행사 상품 매출이 50%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민/유창재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