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신헌철 SK(주) 사장 ‥ "여덟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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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신헌철 SK㈜ 사장에겐 잊을 수 없는 해다.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며 배를 탔던 신 사장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신 해이기 때문.신 사장에게 가장 어려운 삶의 고비였다.
당시 신 사장의 나이는 여덟 살.지금도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다.
당연스레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당시 남동생 우철씨는 여섯 살이었고 여동생 홍란씨는 돌잔치를 하기도 전이었다.
당시 남은 건 시골집과 밭 8마지기가 전부였다.
신 사장은 하숙집을 하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여객터미널을 오가며 호객행위를 했다.
손님을 모셔오다 중간에 여관으로 손님을 뺏기면 한숨을 쉬곤 했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부산 해운대로 이사했다.
어머니와 행상을 하기 위해서다.
신 사장의 유년은 그랬다.
가난 때문에 신 사장은 인문계를 포기하고 부산상고에 입학했다.
장학제도 때문이었다.
은행원의 꿈을 안고 신 사장은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학 때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은 계속 어려웠다.
대학은 서울대를 목표로 했다.
아쉽게도 1964년 서울 상대에 떨어지고 부산시립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이듬해 또 낙방했다.
결국 3수를 하고나서야 1966년 부산대학교에 들어갔다.
신 사장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병대에 입대했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다.
육군보다 2개월 짧았던 복무기간도 한 몫했다.
하지만 신 사장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제대를 4개월 앞둔 1968년 초 북한의 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면서 복무기간이 무기한 연장된 것.결국 예정기간인 26개월보다 7개월 많은 33개월이 지나서야 제대했다.
제대 후 고시도 생각했었지만 형편상 취직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가난,3수,해병대,군복무 연장….어쩌면 일찍 여읜 아버지로 인해 신 사장의 고난이 커진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신 사장은 원망이나 그리움을 넘어 또 하나의 교훈으로 삼았다.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며 배를 탔던 신 사장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신 해이기 때문.신 사장에게 가장 어려운 삶의 고비였다.
당시 신 사장의 나이는 여덟 살.지금도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다.
당연스레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당시 남동생 우철씨는 여섯 살이었고 여동생 홍란씨는 돌잔치를 하기도 전이었다.
당시 남은 건 시골집과 밭 8마지기가 전부였다.
신 사장은 하숙집을 하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여객터미널을 오가며 호객행위를 했다.
손님을 모셔오다 중간에 여관으로 손님을 뺏기면 한숨을 쉬곤 했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부산 해운대로 이사했다.
어머니와 행상을 하기 위해서다.
신 사장의 유년은 그랬다.
가난 때문에 신 사장은 인문계를 포기하고 부산상고에 입학했다.
장학제도 때문이었다.
은행원의 꿈을 안고 신 사장은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학 때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은 계속 어려웠다.
대학은 서울대를 목표로 했다.
아쉽게도 1964년 서울 상대에 떨어지고 부산시립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이듬해 또 낙방했다.
결국 3수를 하고나서야 1966년 부산대학교에 들어갔다.
신 사장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병대에 입대했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다.
육군보다 2개월 짧았던 복무기간도 한 몫했다.
하지만 신 사장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제대를 4개월 앞둔 1968년 초 북한의 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면서 복무기간이 무기한 연장된 것.결국 예정기간인 26개월보다 7개월 많은 33개월이 지나서야 제대했다.
제대 후 고시도 생각했었지만 형편상 취직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가난,3수,해병대,군복무 연장….어쩌면 일찍 여읜 아버지로 인해 신 사장의 고난이 커진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신 사장은 원망이나 그리움을 넘어 또 하나의 교훈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