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에 결국 미국이 우리에게 가장 민감한 '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따라 농업.자동차.섬유 등 남은 쟁점을 놓고 최종 담판을 지어야 하는 다음 주 통상장관급 협상의 전망도 더욱 불투명해졌다.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는 22일 나흘간의 농업 고위급 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번 고위급 협상에서 쌀 문제가 공식 논의되지는 않았으나, 크라우더 USTR 수석협상관이 협상 끝나기 직전 다음주 양국 장관급 협상 대상에 쌀도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동안 웬디 커틀러 한미FTA 미국 측 수석대표가 협상장 밖에서 브리핑 등을 통해 "쌀도 언젠가 거론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힌 적은 있지만, 미국 측이 협상테이블에서 쌀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미국 측의 돌발 통보에 우리 측 협상단은 일단 겉으로는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민 차관보는 "미국 측이 쌀 문제 제기 의향을 밝힌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쌀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우리 측의 확고한 입장을 다시 전달했다"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홍수 농림부장관,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 등 우리 측 고위 관료들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쌀은 양허(개방)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미국이 쌀을 거론하면 협상을 깰 수 있다"며 단언해 온 만큼, 이날 미국 측의 쌀 언급으로 장관급 협상을 앞둔 우리 측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날 오전 박해상 농림부 차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쌀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한미 간)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고, 지난 19일 박 장관도 "막판에 미국이 쌀을 꺼내겠느냐"고 반문하는 등 전반적으로 쌀 문제를 낙관하고 있던 터라 우리 측의 충격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된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음 주 장관급 협상에서는 최대한 추리고 남은 핵심 쟁점들을 놓고 결국 '주고 받기'식 논의가 진행될 수 밖에 없는데, 어느 쪽이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사용할 카드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는 것은 당연하고 미국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인 쌀을 끝까지 거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얘기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는 "미국이 쌀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제외해 줄테니, 너희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양보하라는 식의 요구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미국 입장에서 쇠고기에 비하면 우리 측 쌀 개방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다"며 미국이 협상용 카드가 아닌, 실제로 쌀의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