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 영업 및 생산 현장 중심의 인력 재배치 바람이 불고 있다.

내수 침체와 환율 하락 등으로 수익성 악화 추세가 수 년째 이어지면서 현대자동차 LG SK 롯데 동부 등 주요 대기업들이 본사의 기획·지원 인력을 줄이는 대신 여유 인력을 영업이나 마케팅,생산 등 현장 부서에 전진 배치시키고 있는 것.

기업들이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돈 버는 인력' 보강에 매달리고 있다는 의미로 그만큼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력·조직 구조조정 열풍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LG SK 롯데 동부그룹 등이 인력 재배치 작업을 시작했다.

LG전자는 서울 여의도에 근무하는 본사의 경영지원 인력(스태프) 840여명 가운데 40%가량을 영업이나 마케팅 등 일선 사업 부서에 전진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텔레콤은 올초 본사 스태프 가운데 평가항목에서 상위 5~10%를 차지한 우수 인력을 뽑아 영업 일선에 배치했다.

KT는 작년 11월 본사 지원 조직의 핵심 임원들을 영업과 마케팅 등 현장 부서로 내려보낸 데 이어 12월 초에는 본사 인력 5200명 중 11.5%인 600명을 현업 부서에 배치했다.

현대차그룹도 작년 9월 그룹의 사령탑 역할을 하던 기획총괄본부를 기획조정실로 축소·개편하고 160명에 달했던 기획 부문의 인력을 100명으로 줄였다.

현대차는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외 영업본부의 인력과 권한을 크게 보강하는 조직 개편도 실시했다.

인력 재배치뿐 아니라 유사·중복 업무를 합쳐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동부그룹은 지난 20일 그룹 내 계열사 지원 조직인 ㈜동부 컨설팅 부문을 그룹 내 IT(정보기술) 계열사인 동부정보기술과 합병키로 결정했다.

역할이 중복된다는 판단에서다.

◆수익성 악화 타개책

기업들의 인력 재배치 및 본사 조직 슬림화 추세는 불황을 이겨내려는 위기 경영의 일환에서 나온 것이다.

내수경기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는 데다 원화 강세,원자재값과 유가가 치솟는 '3고(高) 현상'까지 겹쳐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한 탓이다.

따라서 이 같은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 추세는 전 산업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실제 LG전자는 2004년 이후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줄어드는 실적 부진을 보이고 있다.

2004년 24조6593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지난해 23조1707억원으로 6%가량 줄었고,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조2497억원에서 5349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지원 부서 인력을 최소화하는 대신 영업과 마케팅 부서를 강화해 매출을 늘리기 위한 타개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대차도 비슷한 상황이다.

내수 침체와 장기 파업,경쟁 업체의 공세 강화로 3년째 매출과 영업이익이 하락세다.

지원 및 기획 부서의 개편을 통해 우수 인력을 국내외 영업부서로 전진 배치한 까닭이다.

삼성전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도체 부문은 업황 부진 속에 갈수록 영업이익이 줄고 있고,휴대폰 분야는 선두 업체인 노키아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양상이다.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의 인력 재배치는 과거 역량이 떨어지는 인력을 구조조정하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매출과 직결되는 일선 현장에 본사의 우수 인력을 내려보내 판매를 극대화하면서 불황을 이겨내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