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교수의 이슈경제학] 유로달러시장과 금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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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란에서 혁명을 일으켜 친미 성향의 팔레비 국왕을 축출한 후 미국대사관을 점령하고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었다.
이때 미국 정부가 취한 많은 제재조치 중 하나가 미국 내 이란자산의 동결조치였다.
이란이 미국에 예금한 돈을 찾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서로 사이가 나쁜 국가들 간 금융거래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달러는 미국이 발행한 돈이다.
따라서 미국이 발행한 돈으로 표시된 자금은 미국에 예치되고 미국의 통제를 받는 것이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달러라는 화폐 가치를 궁극적으로 책임지는 국가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만 되지 않았다.
1940년대 말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당시 소련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달러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국가 사이가 냉랭해지기 시작하자 소련은 자국자산을 미국에 예치해 놓는 것이 찜찜해졌다.
일단 유사시 제재를 받거나 동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결국 소련은 자국보유 자산을 미국이 아닌 제3국에 예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유럽에 있는 은행에 달러자산을 예치하는 것이었다.
결국 런던에 있는 은행 등에 달러자산을 예치했고 이것이 바로 유럽에 있는 달러라는 의미에서 유로달러시장의 시작이 됐다.
이제 달러로 표시된 자금이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제3자에게 예치되고 또 다른 제3자들을 대상으로 대출되는 자금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는 역외시장(external market)이라 한다.
소련이 처음에 예치한 돈은 40억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자금이 일종의 종자돈이 돼 거대한 금융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 이후 유로달러시장은 몇 가지 이유에 의해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리한 것은 지불준비금 예치의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미국에 있는 은행이 달러예금을 받을 경우 반드시 일부를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러나 런던에 있는 영국계 은행이 달러로 된 예금을 받을 경우 지불준비금 적립의무가 없다.
예금의 일부를 남겨놓든지,모두 대출하든지 맘대로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돈 장사하기가 훨씬 편하다.
필요한 경우 예금을 전액 대출하고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이익은 훨씬 더 커지고 예금고객에게 보다 높은 금리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이자율평형세도 한몫했다.
미국정부가 1963년에 부과한 이 조치는 미국인이 외국자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받더라도 이에 대해 세금을 매겨 국내와 동일한 수익이 나오도록 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인들의 해외자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됐고,이는 미국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외국기업들이 미국보다는 유로달러시장으로 몰리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또한 '레귤레이션 큐'로 불리는 이자율상한 설정조치도 한몫했다.
미국에 예금하면 이자율에 상한선이 존재하는데 유로달러시장에 달러를 예금하면 이자율에 상한선이 없다.
1960년대 말 이자율이 높아지자 미국 내에서 상한조치가 작동했고 달러자금은 미국을 이탈해 유럽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뿐인가.
미국 내에서는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인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엄격히 분리된 반면 유럽에서는 유니버설 뱅킹 덕분에 금융회사들이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을 겸영할 수 있었고 이 또한 유로달러시장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1970년대 초 결정적인 계기가 도래했다.
바로 오일쇼크였다.
주지하다시피 유가가 오르면 모두 힘들어진다.
필수재에 가까운 석유 사용을 줄이기는 매우 힘들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돈을 내고 석유를 사서 써야 한다.
그런데 유가가 오를 때 터지는 웃음을 참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다.
바로 산유국들이다.
배럴당 약 3달러 수준이던 유가가 12달러 수준으로 상승하자 이들은 신이 났다.
오일머니라고 이름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달러가 산유국들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고 이 막대한 자금을 산유국들은 상당부분 유로달러시장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유로달러시장은 이를 계기로 엄청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야기됐다.
오일달러 덕택에 엄청난 자금이 예치되자 이 돈을 대출할 데가 마땅치 않던 은행들이 남미 쪽 국가에 집중적으로 대출해주었는데,이들 국가의 사정이 한꺼번에 나빠지게 되면서 남미의 외채위기로 이어지고 국제금융시장이 1980년대에 크게 흔들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유로달러시장 규모는 약 3조5000억달러로 파악된다.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유럽을 무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며 이 덕분에 런던은 확실한 금융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요인도 있기는 했지만 미국의 각종 금융규제 조치가 런던이 전 세계적 금융허브가 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셈이다.
우리가 구호로 삼고 있는 금융허브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
이때 미국 정부가 취한 많은 제재조치 중 하나가 미국 내 이란자산의 동결조치였다.
이란이 미국에 예금한 돈을 찾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서로 사이가 나쁜 국가들 간 금융거래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달러는 미국이 발행한 돈이다.
따라서 미국이 발행한 돈으로 표시된 자금은 미국에 예치되고 미국의 통제를 받는 것이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달러라는 화폐 가치를 궁극적으로 책임지는 국가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만 되지 않았다.
1940년대 말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당시 소련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달러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국가 사이가 냉랭해지기 시작하자 소련은 자국자산을 미국에 예치해 놓는 것이 찜찜해졌다.
일단 유사시 제재를 받거나 동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결국 소련은 자국보유 자산을 미국이 아닌 제3국에 예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유럽에 있는 은행에 달러자산을 예치하는 것이었다.
결국 런던에 있는 은행 등에 달러자산을 예치했고 이것이 바로 유럽에 있는 달러라는 의미에서 유로달러시장의 시작이 됐다.
이제 달러로 표시된 자금이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제3자에게 예치되고 또 다른 제3자들을 대상으로 대출되는 자금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는 역외시장(external market)이라 한다.
소련이 처음에 예치한 돈은 40억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자금이 일종의 종자돈이 돼 거대한 금융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 이후 유로달러시장은 몇 가지 이유에 의해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리한 것은 지불준비금 예치의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미국에 있는 은행이 달러예금을 받을 경우 반드시 일부를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러나 런던에 있는 영국계 은행이 달러로 된 예금을 받을 경우 지불준비금 적립의무가 없다.
예금의 일부를 남겨놓든지,모두 대출하든지 맘대로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돈 장사하기가 훨씬 편하다.
필요한 경우 예금을 전액 대출하고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이익은 훨씬 더 커지고 예금고객에게 보다 높은 금리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이자율평형세도 한몫했다.
미국정부가 1963년에 부과한 이 조치는 미국인이 외국자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받더라도 이에 대해 세금을 매겨 국내와 동일한 수익이 나오도록 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인들의 해외자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됐고,이는 미국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외국기업들이 미국보다는 유로달러시장으로 몰리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또한 '레귤레이션 큐'로 불리는 이자율상한 설정조치도 한몫했다.
미국에 예금하면 이자율에 상한선이 존재하는데 유로달러시장에 달러를 예금하면 이자율에 상한선이 없다.
1960년대 말 이자율이 높아지자 미국 내에서 상한조치가 작동했고 달러자금은 미국을 이탈해 유럽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뿐인가.
미국 내에서는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인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엄격히 분리된 반면 유럽에서는 유니버설 뱅킹 덕분에 금융회사들이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을 겸영할 수 있었고 이 또한 유로달러시장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1970년대 초 결정적인 계기가 도래했다.
바로 오일쇼크였다.
주지하다시피 유가가 오르면 모두 힘들어진다.
필수재에 가까운 석유 사용을 줄이기는 매우 힘들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돈을 내고 석유를 사서 써야 한다.
그런데 유가가 오를 때 터지는 웃음을 참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다.
바로 산유국들이다.
배럴당 약 3달러 수준이던 유가가 12달러 수준으로 상승하자 이들은 신이 났다.
오일머니라고 이름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달러가 산유국들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고 이 막대한 자금을 산유국들은 상당부분 유로달러시장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유로달러시장은 이를 계기로 엄청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야기됐다.
오일달러 덕택에 엄청난 자금이 예치되자 이 돈을 대출할 데가 마땅치 않던 은행들이 남미 쪽 국가에 집중적으로 대출해주었는데,이들 국가의 사정이 한꺼번에 나빠지게 되면서 남미의 외채위기로 이어지고 국제금융시장이 1980년대에 크게 흔들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유로달러시장 규모는 약 3조5000억달러로 파악된다.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유럽을 무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며 이 덕분에 런던은 확실한 금융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요인도 있기는 했지만 미국의 각종 금융규제 조치가 런던이 전 세계적 금융허브가 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셈이다.
우리가 구호로 삼고 있는 금융허브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