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표지만 보면 마치 성문화를 다룬 여성 인문교양서 같다.

첫머리의 '나는 친절이라는 젖을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여분의 젖을 남길 것입니다'(빌리 브래그)라는 인용문에서도 '웬 젖?' 하고 의아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상승 장세(bull market)'를 상징하는 '황소(bull)'에 열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곧 이어 친절이나 모성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젖'의 의미도 선명해진다.

미국 여성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신간 '보이지 않는 가슴-돌봄 경제학(원제:Invisible Heart:Economics and Family Values)'(윤자영 옮김,또하나의문화)에서 현대 경제가 이기심에 바탕한 '보이지 않는 손'뿐만 아니라 이타심을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가슴'의 힘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 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원리로 경쟁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힘을 뜻한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가슴'은 사랑·의무·호혜 등 부드러운 배려와 따뜻한 가족의 가치를 의미한다.

그동안의 주류 경제학은 양육이나 가사·간병·노인 부양 등 '돌봄노동'을 여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간주해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여성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가정 내의 돌봄노동을 거부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시장으로 대거 진출했다.

그 결과 여성에 의해 싸게 공급돼 왔던 돌봄노동의 양과 질은 큰 위기를 맞고 있고 돌봄노동의 비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주류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따라서 저자는 "현대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손'과 '가슴'이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손'과 '가슴'을 조화시키기 위해 더 친절하고 지혜로운 형태의 경제 발전 모델을 찾고,돌봄노동에 드는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면서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일 방법과 적절한 보상법을 개발하라고 제언한다.

그리고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개별 가족에 가해지는 스트레스와 위험을 줄이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하며,자유와 의무,성취와 보살핌을 조화시킬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360쪽,1만6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