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아 명품관이 직영하는 편집숍 '스티븐 알란' 매장에 '3.1 필립 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여성복 브랜드가 등장한 것은 지난해 봄.그 뒤 1년간 이 브랜드는 70만~80만원대 드레스(속칭 원피스)와 40만~50만원대 블라우스·셔츠 등 여성복을 판매해 한 달 평균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티븐 알란 입점 15개 브랜드 중 단연 1위다.

오원만 갤러리아 해외상품팀장이 2005년 가을 뉴욕 컬렉션(이듬해 봄·여름 상품 전시)에서 직접 발굴한 이 브랜드가 입점 1년 만에 스티븐 알란 편집매장 매출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신데렐라'가 된 것.

3.1 필립 림이 인기를 끈 것은 얇게 가공한 캐시미어,라이크라 혼방,울 트리코틴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든 고급 재(再)가공 소재에 '꽃무늬' 등 가벼운 느낌의 디자인과 실루엣을 적용한 게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혔기 때문.디자인의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와 고급 소재를 쓰기 어려운 일반 영 캐주얼 브랜드의 틈새를 적절하게 파고든 결과라는 평가다.

중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필립 림은 원래 미국 UC롱비치대에서 재무를 전공한 경영학도다.

미 서부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 '카테요네 아델리'에서 인턴으로 패션을 배우기 시작해 1년 반 뒤 뉴욕의 의상 디자인 전문회사인 '디벨로프먼트'로 옮겨 수석 디자이너를 지냈다.

2005년 초 뉴욕 컬렉션에 초청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와 패션하우스를 갖게 됐다.

경영 마인드를 가진 패션 디자이너로서 '팔리는 옷'을 만들 줄 아는 그의 재능은 예술적인 성과에만 치중하는 컬렉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더욱 빛났다.

딱 보기에도 시장성이 넘치는 3.1 필립 림의 꽃무늬 드레스가 때마침 명품 편집매장 강화를 위해 뉴욕 컬렉션을 찾았던 오 팀장의 눈에 대번에 들었던 것.갤러리아는 매출이 좋은 3.1 필립 림을 조만간 별도의 매장으로 독립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이처럼 백화점이 직접 발굴한 직수입 디자이너 브랜드가 뉴 럭셔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백화점들은 자체적으로 발굴한 브랜드를 편집매장에 배치해 명품으로 키워낸 뒤 독립 매장을 갖춰 명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갤러리아가 키워 낸 '고야드'나 현대백화점이 들여와 다른 백화점에까지 입점시킨 토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