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하품- 주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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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흙은 아직은 한 장의 늙은 피부 빛깔
털갈이하고 있는
서산 목장 산등성이의 잔설을 보며
방금 지나친 경운기와 소 떼들의 느려터진 시간을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의 후배가 소 얼굴을 하고 하품을 한다
고향은 늘 속도를 못 내네요
무속도의 삶이로구나
멀리 산등성이 개심사 주차장 꼭대기까지
저토록 느릿느릿한 속도를 주시다니
하늘도 참 잘 생각하시었다,이 봄철 우리에게 이토록 느릿느릿한
길을 주시다니 하품을 모처럼 주시다니
여기가 무속도의 시간대로구나
나는 잠시 가던 길 잠가놓고
우리가 찾아가는 무속도의 시간대로 푹 빠져든다
-조정권 '하품-주택에게'전문
피곤해서 하는 하품은 진짜 하품이 아니다.
혹사당한 몸이 주인에게 보내는 경고쯤 된다.
이제 그만 부려먹고 휴식을 줄 것! 진짜 하품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저절로 나와야 한다.
졸음 쏟아지는 고향의 봄 느려 터진 시간 속에서,되새김질에 지친 소 얼굴로 하는 하품이 진짜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바쁠 것도 없는 '무속도의 시간'에 나오는 하품이다.
그런 하품을 해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는 게 문제다.
할 일이,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너무 많은 탓이다.
언제부턴가 하품까지도 잊고 살아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