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신청서에 재산을 '없음'으로 써낸 뒤 법원으로부터 빚탕감 결정을 얻어낸 A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A씨로부터 받아낼 돈이 있던 채권자들이 "정말 돈이 한푼도 없는지 의심스럽다"며 이의신청을 했고,자체 조사에 들어갔던 법원이 A씨 앞으로 된 2억1000만원의 돈을 밝혀낸 것.A씨는 법원으로부터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받아낸 뒤 부동산 경매로 받은 2억1000만원을 사용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감춰진 재산이 드러나는 통에 '사기파산'으로 형사처벌마저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법원으로부터 면책(빚탕감) 결정을 받아내더라도 숨겨진 재산이 드러날 경우 이처럼 면책결정이 전면 취소돼 경제활동 제약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 전망이다.

법원은 A씨와 같은 사기 파산이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그동안 파산법에 존재했지만 유명무실했던 면책취소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법원에 파산신청이 접수되면 1개월 이내에 파산선고가 내려진다.

면책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2~3개월.한 해 동안 서울중앙지법에 몰리는 파산신청 건수가 12만여건에 달하는 데 반해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들은 극소수에 불과해 파산신청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는 게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한번 내려진 면책결정이 번복되는 사례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재산은닉 등의 '사기파산' 케이스가 늘어나면서 법원은 면책취소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사기파산임이 드러날 경우 해당자를 검찰에 통보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홍성준 판사는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받은 경우 채권자들이 면책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신청하면 법원으로부터 취소결정을 받아낼 수 있다"며 "사후통제 기능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불량 파산자를 가려내기 위해 파산신청 단계별 대책안을 마련했다.

세부 지침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항은 파산관재인을 선임하는 것.파산신청자 가운데 배우자나 친척 등이 보유한 재산에 대해 형성과정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못할 경우 법원은 파산관재인을 선임,파산신청자의 재산형성 과정 등을 집중 조사하게 된다.

파산관재인이 선임되면 파산신청자는 보통 변호사인 관재인에 대한 보수를 따로 물어야 한다.

재산심사 과정이 길어지는 만큼 파산선고까지 이르는 기간도 길어진다.

파산선고 후 면책단계에서도 법원은 '카드깡(돌려막기)' 등에 대해 엄격히 심사하기로 했다.

신용카드로 냉장고 세탁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입하거나 상품권을 사들였다가 이를 현금으로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생활여건 등을 고려해 재량면책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40대 여성의 파산신청자가 파산신청 전에 카드로 3000만~4000만원에 달하는 차량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면책을 불허했다"며 "경마와 도박,투기적 주식거래나 과도한 낭비로 인해 파산에 이르렀을 경우 원칙적으로 면책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서류작성 등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법조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판단,브로커 개입을 막기 위해 무료 소송구조사업 대상을 만 70세 이상에서 만 65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