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이 '춘향'에서 읊은 정절(貞節)은 애달프다 못해 처절하다. "사랑이 무엇이기에/정절이 무엇이기에/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하단 말인가/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흉측한 얼굴에 까무러쳐도/어린 가슴 달콤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일편단심."

그토록 순결을 중요시했기에 여성들의 바깥출입은 자유롭지 못했고,남녀는 유별하다 해서 동석하는 것조차 꺼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활동하던 가수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에 내릴 때의 소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속살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불륜을 다뤘다 해서 외제문화의 앞잡이로 매도를 당했다.

불과 20여년 사이,우리 사회의 성에 관한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문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은 탓이다. 최근 여고생과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상당수가 혼전 섹스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제는 "혼전 순결을 꼭 지켜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심심찮게 공론화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순결 지키기'운동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다. 금욕을 모토로 한 'True Love Waits(진정한 사랑 기다리기)''베스트 프렌드''선택' 등의 클럽이 결성되면서 10대와 대학생들이 줄을 지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모델들도 '혼전 순결' 대열에 서서 운동의 열기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요즘엔 '순결 무도회(Purity Ball)'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버지가 딸들과 함께 춤을 춘 뒤 '순결 반지'와 '순결 팔찌'를 끼워주면서 딸들로부터 순결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까진 남자와 입맞춤이나 성관계를 갖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정조를 지키겠다는 순결서약은 순전히 딸들의 의지에 달렸다. 그렇지만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실을 맺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