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培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지구촌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중에도 답답하기만 했던 국내 증시가 지난 2월 말 수급에 대한 부담감이 해소되고 북한 핵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KOSPI가 1500선을 지나 1600선도 가볍게 넘을 것 같은 당시의 기세는,그러나 중국발(發) 글로벌 증시 급락과 이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이내 무너져 버렸다. 최근 국내 증시가 글로벌 증시 회복에 힘입어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국내 증시가 이처럼 대내외 충격에 유난히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투자의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증권선물거래소(코스닥 포함)는 세계 거래소 가운데 시가총액 기준으로 15위,상장회사 수로 8위,거래량 규모로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주변국 증시와 비교하면 시가총액 면에서만 홍콩에 뒤지나,상장기업 수와 연간 거래량 등에서는 대부분의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 비해 크게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시는 양적인 규모만큼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먼저 안정적인 투자기반이 미약(微弱)하다.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장기 개인투자자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은행 증권 보험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비중이 매우 낮다. 둘째 거래량 규모에 비해 거래 형태가 소액·단기매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주식 평균 단위거래 금액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비교해서도 매우 적은 수준이지만,매매회전율은 미국 나스닥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 중이다. 그만큼 국내 증시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지 못하면서 쉽게 불안정해짐을 의미한다.

셋째 최근 펀드가 주가상승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그 효율성은 낮다. 국내 펀드 총 자산 규모에 비해 펀드당 자산규모가 매우 영세하고,펀드운용이 주로 단기·고수익을 지향하기 때문에 장기 투자자의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 따라서 펀드가 증시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회계의 불투명성 등으로 투자자로부터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높은 외국인 주식투자 비중에도 불구하고 해외기업 상장,경제자유도 등 면에서 국제화 역량(力量)이 미흡하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국내 증시는 기업들의 높은 내재가치에도 불구하고 대내외 여건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기업부문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시 본연의 자본공급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기 어렵고,우리가 목표로 하는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도 힘들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은 흑자 경제 주체인 국내 가계의 중장기적인 주식투자를 유도·확대함으로써 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장기투자 성향을 지닌 개인들이 주식시장으로 회귀하고,시중의 부동자금이 자본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자본시장통합법을 차질 없이 시행하는 등 자본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개인들이 선호하는 우량 중소 벤처기업들을 선별·집합한 벤처펀드를 구성해 자금력이 우수한 기관투자가나 외국인들도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형 비상장 기업의 무리한 상장,지나친 유상증자 등으로 자칫 주식시장에서 초과공급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편 기업들도 윤리경영을 확대하고,경영의 투명성과 국제적 정합성(整合性)을 높여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증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인색했던 기업의 배당성향도 높여 장기 투자자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증시가 살아나야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원활해지고,이를 통해 투자활동이 확대되면서 경제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증시 활성화는 또한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가 재연될 우려를 크게 줄여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증시의 질적 경쟁력을 서서히 높여 나간다면 최근의 주가 상승세를 대세상승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