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를 잘못 판독해 정상인을 급성충수염(맹장염) 환자로 오인,수술한 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 의사 측은 CT 사진의 확진율이 100%에 이르지 못한다는 임상의학적 통계를 제출하며 면책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사들의 오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현행법상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가 피고의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하는데 비전문가인 환자가 의사의 의료과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의료소송에서 환자 측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의사 측에 우선 부여해야 한다는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이 20년째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판례를 통해 환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있는 추세다.

부산지법은 지난해 눈꺼풀 아래 쪽 잔주름을 제거하려다가 상안검(눈 위꺼풀) 수술을 받은 황모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병원 측은 "눈꺼풀에 잉크로 잘라낼 부분을 그리고 마취하는 과정에서도 황씨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도 최근 수련의(인턴)가 컴퓨터에 잘못 입력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취보조제를 투여했다가 근육종 수술환자를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책임을 물어 주치의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1995년 손바닥과 발바닥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치료하기 위해 교감신경 절제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전모씨 사건에서도 의사들의 책임을 인정했다.

"의료행위가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보통인이 손해발생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입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료진이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지 않았다면 책임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전신마취 수술을 받다 사망한 A씨 사건에서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특이체질로 인한 뇌출혈이 원인이었던 점을 들어 "의료진이 일반인의 수인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