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경선제를 통해 2002년 4월27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지지율이 50% 가까이 치솟았다.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은 12월 대선까지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치러진 지방선거(5월31일)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뒤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지율이 반토막 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이었다.

대선 직전에 이뤄진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해피엔딩으로 막은 내렸지만 11월까지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 초 대선출마 포기를 선언한 고건 전 총리도 지난해 여름까지는 지지율 30%대로 확고부동한 1위를 달렸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0순위로 꼽히면서 열린우리당이 고 전 총리와의 연대에 열을 올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멈출 것 같지 않던 고공행진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면충돌 등 몇 가지 악재를 거치면서 지난해 말 10%대로 급전직하했다.

불과 4개월여 만에 지지율이 2위도 아닌 3위로 주저앉았다.

돕겠다는 인사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결국 고 전 총리는 레이스를 접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롤러코스터'식 지지율 급등락은 1997년 대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7월21일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40% 안팎으로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10∼15%포인트 정도 앞서갔다.

적어도 이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이 후보가 절대 유리한 국면이라는 데 별 이의가 없었다.

후보로 확정된 뒤 4일 만에 불거진 의혹이 치명타였다.

이 후보의 지지율은 2주일 만에 역전됐고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 후보로 선출된 11월에는 10% 초반까지 밀렸다.

한때 지지율 30%를 돌파하며 상승세를 탔던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200억원을 지원받았다"는 매터도 한방에 반토막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주였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은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준다.

그만큼 지지율은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심하게 요동쳤다.

초반의 높은 지지율이 투표일까지 이어지지 않은 연유다.

심지어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의 지지율 1위도 대선승리를 담보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변화무쌍한 게 민심이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는 지난 대선의 교훈을 정치권은 애써 외면한다.

얼마 전까지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의원들이 줄지어 떠난 것이나 백년정당의 기치를 3년 만에 포기하려는 것은 낮은 지지율 때문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기존 정치와 다른 새로운 정치를 위해'라는 미사여구를 붙였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5∼6%의 지지율로는 예선전을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당의 주인임을 강조하다 돌연 '동토의 나그네'를 자처한 그를 측근들조차 외면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

'지지율의 덫'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대선까지 남은 9개월여는 과거 대선에 비춰볼 때 정치판이 두 번은 요동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앞으로 지지율 변화가 대선정국의 불확실성을 한층 증대시킬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게 임기응변식 마술이 아니라 국민을 편안케 할 진정한 지도자요,감동을 주는 정치라는 걸 우리 정치권이 모르는 한 대선전은 안개 속일 수밖에 없다.

이재창 정치부 차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