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10km쯤 떨어진 곳에 수백여개의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로 '四虎市場(사호시장)'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나타난다.

바로 중국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헝가리 내 '미니 중국'이다.

이곳은 원래 부다페스트로 유입되는 수입 물품을 일시 보관하는 일종의 물류 기지였지만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상점으로 전용하면서 거대 시장으로 변했다.

2주 전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짐꾼들은 길을 비키라며 연신 소리를 질러댔고,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며 물건을 잔뜩 사고 있었다.

한쪽에는 암거래상들이 달러나 유로화를 바쁘게 세고 있는 장면도 목격됐다.

어림잡아 남대문시장의 3~4배는 될 만한 규모에 빽빽이 들어선 천막 상점들의 물건은 대부분 중국제였다.

근처 주차장에서 만난 미클로스는 "유명 브랜드가 부착된 이곳 물건들은 중국산 '짝퉁'이라고 보면 된다"며 "하지만 값이 매우 싸 헝가리인들이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실제 티셔츠 등 대부분의 의류에 적혀 있는 가격은 800포린트(약 4000원)를 밑돌았다.

헝가리 말을 못하는 중국 상인들은 현지 점원을 고용해 옷 전자제품 가구 그릇 액세서리 등을 팔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인구 200만명의 부다페스트에는 현재 4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살고 있다.

동유럽에서 최대 중국인촌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천안문사태를 전후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헝가리 정부가 1988년부터 중국인의 입국 비자를 면제해줬기 때문이다.

1991년 한 해에만 2만1000여명의 중국인이 헝가리로 이주했다는 게 헝가리 이민국 관리의 설명이다.

이후 사호시장 같은 벼룩시장에서 생업을 시작해 10여년 만에 터전을 굳힌 것이다.

현재 부다페스트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만 4개며 중국 식당은 1000여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도 이곳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4년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10개국이 유럽연합(EU)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중국 정부가 EU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헝가리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현지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는 "요즘 중국 상무부 관계자들이 헝가리 내 중국인들을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주 왕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라하·부다페스트=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