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定義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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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하도 심각하게 고령화 문제를 논의하기에 불쑥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고령화를 정의할 때 나이를 대폭 올리면 고령화 인구는 그 순간 크게 줄어들 거고 그러면 문제는 바로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 순간 참석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웃자고 한 얘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고의 전환을 해 보자는 얘기였다. 과거 기준의 고령화 정의부터 바꾸는 데서부터 출발해보자는 의미였다.
포항공과대학 수석졸업자가 의대를 간다고 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얘기일까. 차석 이하가 가면 그나마 괜찮은데 수석이라서 문제라는 것일까. 이공계가 이공계 아닌 곳으로 갔다는 게 문제라면 이번 기회에 의대를 이공계의 범주에 포함시켜버리면 시빗거리가 해결되는 것 아닌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분류한다고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는 걸까. 의대를 이공계와 인문계라는 이분법으로 굳이 나누면 이공계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의사들에게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서 학위를 취득한 의사는 이공계인가,비이공계인가. 또 의사 아닌 의사들,다시 말해 연구하는 의사들의 경우는 이공계로 분류해야 맞나,아니면 비이공계로 분류해야 맞나? 한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학부과정에 새로 입학하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 특허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사람은 이공계인가,비이공계인가.
넬슨(Nelson)이라는 진화경제학자는 우리 사회가 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물리적 기술','사회적 기술(법,경영,경제제도 등)',그리고 이를 엮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 굳이 구분하자면 물리적 기술은 이공계이고,사회적 기술은 비이공계다. 그러나 넬슨의 용어로는 둘다 기술이다. 예컨대 사회적 기술을 말하자면 법은 법기술,경영은 경영기술로 본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도 과학이고 싶어 사회과학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인문학도 인문과학이라고 하지 않나. 물론 과학적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과학은 과학이니 아예 이공계,인문계 할 것없이 다 이공계로 간주하고,수학 과학 등은 그런 구분없이 모두 공통적으로 이수하게 하면 안 될 건 또 뭐가 있을까.
미국의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있다고 한다. 요즘 융합을 말하지만 그것은 이공계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내의 칸막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공계·인문계 간 칸막이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부가 과학기술인력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전 주기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이공계로 오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효력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공계와 비이공계라는 구분 자체가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아예 이공계라는 용어를 안 쓰든가,이공계·비이공계 구분을 없애는 것은 어떨지.
일본이 혁신하겠다며 '이노베이션 25'를 내놨다. 고령화를 위기 아닌 기회로 삼고,문과·이과 같은 구분은 재검토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포항공과대학 수석졸업자가 의대를 간다고 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얘기일까. 차석 이하가 가면 그나마 괜찮은데 수석이라서 문제라는 것일까. 이공계가 이공계 아닌 곳으로 갔다는 게 문제라면 이번 기회에 의대를 이공계의 범주에 포함시켜버리면 시빗거리가 해결되는 것 아닌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분류한다고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는 걸까. 의대를 이공계와 인문계라는 이분법으로 굳이 나누면 이공계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의사들에게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서 학위를 취득한 의사는 이공계인가,비이공계인가. 또 의사 아닌 의사들,다시 말해 연구하는 의사들의 경우는 이공계로 분류해야 맞나,아니면 비이공계로 분류해야 맞나? 한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학부과정에 새로 입학하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 특허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사람은 이공계인가,비이공계인가.
넬슨(Nelson)이라는 진화경제학자는 우리 사회가 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물리적 기술','사회적 기술(법,경영,경제제도 등)',그리고 이를 엮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 굳이 구분하자면 물리적 기술은 이공계이고,사회적 기술은 비이공계다. 그러나 넬슨의 용어로는 둘다 기술이다. 예컨대 사회적 기술을 말하자면 법은 법기술,경영은 경영기술로 본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도 과학이고 싶어 사회과학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인문학도 인문과학이라고 하지 않나. 물론 과학적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과학은 과학이니 아예 이공계,인문계 할 것없이 다 이공계로 간주하고,수학 과학 등은 그런 구분없이 모두 공통적으로 이수하게 하면 안 될 건 또 뭐가 있을까.
미국의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있다고 한다. 요즘 융합을 말하지만 그것은 이공계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내의 칸막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공계·인문계 간 칸막이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부가 과학기술인력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전 주기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이공계로 오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효력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공계와 비이공계라는 구분 자체가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아예 이공계라는 용어를 안 쓰든가,이공계·비이공계 구분을 없애는 것은 어떨지.
일본이 혁신하겠다며 '이노베이션 25'를 내놨다. 고령화를 위기 아닌 기회로 삼고,문과·이과 같은 구분은 재검토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