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평론가들도 인간인지라,가끔은 제때 영화 보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어제 모 영화제 심사 때문에 뒤늦게 '삼거리 극장'이란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놀라웠다.

작년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은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초상'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그 리스트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사실 '삼거리 극장'에서 줄거리에 대한 요약은 거의 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 음악,노래,의상,무대 장치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하다.

곧 부서질 것 같은 난파선,허름한 삼거리 극장에 불이 켜지면 숨어 있던 혼령들이 하나하나 나타나 밤새 노래와 춤의 흥겨운 축제를 벌인다.

한마디로 로키호러 픽처 쇼의 시네마천국 버전이라고 할까.

특히 극중극 영화,마치 피터 잭슨이 뉴질랜드에서 처음 영화가 만들어졌다며 시치미 뚝 떼고 흑백 영화를 만들어 냈듯,가상 흑백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의 상영은 영화의 압권(壓卷)이다.

영화 속 대사에 '영화가 끝나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자는 가슴에 바닥을 드러낸 자야'라는 대사가 있던데,이 영화야말로 영화가 끝나도 보는 이를 멍하게 만들었다.

평론가에게 평론할 맛이 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일 것이다.

천정좌석에 붙박혀,내가 지금 영화의 역사를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 때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았을 때 그랬고,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을 볼 때 그랬다.

특히 '삼거리 극장'처럼 한국 영화 역사상 족보에 없는 영화를 맞닥뜨렸을 때 이런 기쁨은 배가된다.

감독이 원전(原典)으로 삼은 이상한 나라의 영화 신(scene)들,이 경우는 팀 버튼과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프랑켄슈타인 같은 텍스트를 집어내면서 나만이 영화의 진짜 요리 비법을 아는 듯한,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가 저예산일수록,진심으로 영화를 밀어주고 싶다는 막연한 호감을 느끼는 것은 평론가의 인지상정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영화 평론이란 축제 같은 영화보기와 지옥 같은 글쓰기의 관문을 반복해야 하는 나의 업(業)임에 틀림없다.

널리고 널린 평범한 영화들 틈에서 반짝이며 묻혀 있는 사금파리 같은 숨겨진 영화를 발견하는 일은 평론가에겐 일평생 꿈을 꾸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과 판타지와 현실의 삼거리에 있는 이 작은 영화,'삼거리 극장'은 다시 한번 내게 진실의 순간을 도래하게 만들었다.

올해의 지구를 지켜라,삼거리 극장.전계수 감독에게 진심 어린 파이팅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