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뿐만이 아니라 상상력과 몽상을 자극하고 망막과 함께 열린 마음을 요구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제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헷갈리게 하고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준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모든 것이 밝고 명확하며 딱딱하고 메마르게 그려져 있다.
대상을 객관화시켜보는 매우 '건조한 시선'은 그림을 낭만화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라기보다는 문장의 단어들처럼 존재한다.
그 단어들이 배열되고 결합되면서 모종의 상황성이 만들어진다.
일상의 사물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환경에 놓는 방식이다.
그려진 대상 자체는 사실 이상하지도 않고 별달리 기괴하지도 않아 보이지만 이것들이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충격은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으로 인해 더 강력한 효과를 자아낸다.
예를 들어 마그리트의 대표작 '백지'는 지극히 사실적인 풍경화다.
낮게 자리한 수평의 대지에는 오렌지빛 조명이 반짝이는 집들이 위치해 있다.
캄캄한 집과 숲,나무와 땅은 단호한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반면 하늘은 아름답고 투명한 블루 톤으로 적셔져 있다.
대지는 밤이고 하늘은 낮이나 아침인 셈이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풍경은 별다른 거부감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사실 낮과 밤은 우리가 보는 풍경의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우리가 낮과 밤을 다른 세계로 이해할 뿐이다.
관람객은 쉽고 단순하며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그림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하고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사물과 세계를 편안하게 보여주는 대신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현대미술이란 이렇듯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사유하는 일이 됐음을 선언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