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로 간다''자전거를 타는 여자' 등 장편소설만 발표해온 작가 김미진씨(44)가 첫 단편집 '그녀는 안개와 함께 왔다'(뿔)를 펴냈다.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으로 등단한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부유하는 현대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아홉 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등단 이후 줄곧 장편에만 몰두해온 탓일까.

작가는 "단편을 통한 습작기간이 전무한 나로서는 장편 아홉 권을 쓰는 것만큼이나 벅차고 어려운 일이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화가이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절묘한 이미지의 조화와 함께 맛깔스럽게 읽힌다.

표제작 '그녀는…'는 2005년 뉴욕에 머물던 작가가 귀국 직전 남쪽 지방으로 여행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를 형상화한 작품.안개가 낀 1월 블루리지 산정의 한 여행자 숙소에 낡은 픽업 트럭을 몰고 온 한국인 남편이 손가방 하나만 남긴 채 아내를 버려두고 떠난다.

짐짝처럼 버려진 아내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1년 뒤 남편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그녀가 떠나 버린다.

그녀가 기다린 것은 남편이 아니라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사실은 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내 힘으로 말하고,내 힘으로 느끼고,온전히 내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런 나 자신이요.'(251쪽)

'새우깡 공주'는 미국에서의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의 경험담을 녹여낸 작품이다.

곳곳에 이력서를 넣어 보지만 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엄마가 주는 1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서른 세살 노처녀가 주인공.한국 사회에서 서른을 넘긴 노처녀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한 채 주변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그렇지만 이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내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야.이 세상이 너무 추상적이야.중력이 안 느껴져.그래서 나대로 사는 거야.내 방식대로.'(67쪽)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