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인 한빛소프트를 얘기할 때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를 한빛소프트가 제공했다는 것이다.

전국에 2만개가 넘는 PC방이 생기고 산골짜기까지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된 것도 따지고 보면 한빛소프트 덕분이라는 것. 한빛소프트가 인기 게임인 미국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를 유통하면서 전국이 초고속인터넷의 첨병인 PC방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1999년 설립된 한빛소프트는 올해 스타크래프트 열기 이후 다시 중대 계기를 맞았다.

세계적 게임 서비스 업체로 도약하느냐 여부가 올해 갈린다.

한빛소프트가 배급한 게임은 한두 개가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는 물론이고 '디아블로2''워크래프트3'도 한빛소프트가 유통시킨 게임이다. 당시 이 회사는 PC패키지 게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할 만큼 독보적이었다.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 마련한 기반 덕분이었다. 그해 매출이 583억원,영업이익 36억원,순이익이 87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코스닥에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여세를 몰아 교육업체인 에듀박스 경영권을 인수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02 돌풍' 이듬해인 2003년 한빛소프트는 게임 개발사인 조이임팩트를 인수했고 게임개발사 IMC게임즈에 지분투자를 했다. 2004년엔 미국 플래그십스튜디오와 제휴했고 일본 현지법인도 세웠다. 게임 제국을 설립하는 영광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사이래 두 번의 위기 중 첫 번째 것이 닥치기 시작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탄트라' 개발이 첫 번째 위기였다. 스타크래프트 등 PC패키지게임 유통으로 자신감에 넘쳤던 한빛소프트는 2003년 직접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3년 동안 50억원을 쏟아부었다. 2003년에 매출이 402억원,영업이익 5억원,순이익이 마이너스 17억원을 기록한 이유다.

결과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공개 시범 서비스 첫 날 수만명이 한꺼번에 접속하자 게임 서버가 견디지 못하고 다운돼 버렸다. 수십만명이 게임을 즐기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준비 부족이 문제였다.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다. 한빛소프트에 대한 게이머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영만 회장은 "한번 등돌린 소비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교훈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 위기는 지난해 공개한 MMORPG '그라나도 에스파다'가 가져왔다. 인기 게임 '라그나로크'를 만든 김학규 개발자를 내세워 개발비 10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급 게임이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또 외면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게임 콘텐츠가 부족하다''난해하다' 등 혹평이 쏟아졌다. 영업이익 27억원 적자,순이익 63억원 적자가 말해준다.

정신을 차린 한빛소프트는 재정비에 나섰다. 과금제를 월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로 바꾸고 추가 업데이트 등 게임 완성도에 신경을 썼다. 다행히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현재 게임 순위 42위(게임트릭스 집계)를 기록하는 등 연착륙 중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예회복도 했다.

한빛소프트는 올해 비장한 각오로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전 세계 1위 게임 서비스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게 목표다. 무기는 전 세계 게이머와 업체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작 MMORPG '헬게이트:런던'이다.

'헬게이트:런던'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를 만든 미국의 유명 게임 개발자 빌 로퍼가 개발했다. 로퍼는 플래그십 스튜디오라는 개발회사를 설립한 뒤 처녀작으로 이 게임을 만들었다. 김 회장이 장기사업계획에 따라 2004년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헬게이트:런던'은 아직 서비스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중국과 3500만달러 수출 계약을 맺는 등 출발이 좋다. 한빛소프트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전 지역에서 판권을 행사한다.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함께 만든 미국 현지법인 '핑제로'가 전 세계 온라인 서비스 권리를 갖는다. 한빛소프트는 이 작품에 거의 올인하고 있다.

지난해 전년대비 37% 늘어난 683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한빛소프트는 올해 매출 1000억원,영업이익 1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김한성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최대 기대작인 '헬게이트:런던'이 서비스되면 실적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빛소프트는 올해 줄잡아 대여섯 개의 온라인게임을 쏟아낸다. 총싸움게임(FPS) '테이크다운:더 퍼스트 미션',MMORPG '미소스'와 '에이카',댄스게임 '그루브파티' 등으로 탄탄한 라인업을 갖춘다. 해외법인에서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서비스 사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대표주자가 골프게임 '팡야'다. 태국에서 가입자 260만명을 돌파하며 '국민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효자 게임이다. 유럽 32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4개국에 수출했다. 누적 매출액은 300억원에 달한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2005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한 게임포털 '한빛온'이다. 한때 일평균 순방문자수가 150만명에 달할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58만명으로 줄었다(메트릭스 집계). 넷마블이나 한게임 같이 콘텐츠가 풍부하지 않고 즐길만한 게임이 많지 않다는 게 외면 이유다.

한빛의 주력사업은 온라인게임 서비스지만 완구 유통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 장난감 회사 반다이와 독점 총판계약을 맺고 가면라이더,파워레인저 같은 완구류를 유통하고 있다. 캐릭터 유통 사업은 한빛소프트 매출의 39%를 차지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 한빛소프트의 차별점이다.

한빛소프트는 최근 사옥을 이전했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삼세판'이라는 말을 꺼냈다. 더도 덜도 말고 꼭 세 판. 배수진을 치고 덤비는 마지막 도전이라는 의미다. 그는 "올 한 해 멋지게 삼세판을 마쳐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