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벤저민 프랭클린은 동네 친구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흠뻑 빠진 나머지,어느 날 있는 용돈을 다 털어 호루라기를 샀다.

이를 안 누이와 형제들은 프랭클린을 놀려댔다.

정상가격보다 4배나 비싸게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쥔 즐거움보다 창피하고 분한 마음이 더 컸다.

그후 프랭클린은 무슨 물건을 사거나 일을 할 때마다 "호루라기에 너무 큰 돈을 쓰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서 '호루라기'는 "정도를 벗어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당초 호루라기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뜻으로 널리 사용됐다.

영국 경찰들이 위험에 처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또 법을 위반하는 시민들을 향해 호루라기(whitsle)를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네거리 한가운데에 둥근 통을 놓고 그 위에 올라가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부분의 구기종목에 등장하는 호루라기 역시 선구들의 반칙을 잡아내는 데 주로 사용된다.

심판의 판정이 전적으로 호루라기에 의존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이제는 호루라기가 성폭력 등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 해서 여성과 아동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고막을 가르는 듯한 고음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종종 호루라기를 사용하곤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이 임원들에 대한 정기인사를 마치고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해서 화제다.

"새로운 전략과 목표달성을 위해 모두 힘차게 출발하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호루라기가 가지는 또 하나의 상징성이다.

호루라기는 '경고'와 '출발'이라는 의미만 가진 게 아니다.

발걸음을 맞추는 구령 대신 쓰이는 것을 보면 '조율'의 성격도 강하다.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란한 작금의 상황에서 국민 모두를 하나로 묶는 호루라기 소리가 기다려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