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한 통상장관 회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피를 말리는 협상이었다.

한때 협상 연기설이 흘러나오면서 "협상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기도 했다.

쇠고기 등 농산물과 자동차를 놓고 막판까지 의견 대립이 심했지만 양측의 협상타결 의지를 꺾지 못했다.

촌각을 다투며 협상에 거듭 나선 한국과 미국 협상단은 밤 12시를 넘겨서도 혼전을 거듭했다.

○…30일 아침 하얏트호텔은 중압감에 짓눌려 있었다.

날씨가 화창했지만 폭풍 전야의 고요함으로 느껴졌다.

오전 10시35분,호텔 1층 로비에 나타난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이 입을 열었다.

호텔 1층 로비는 갑자기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이 단장의 입에선 짧은 두 마디만 흘러나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은 유동적인 상황입니다.

오후에도 계속 적극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도망치듯 협상장으로 다시 올라간 이 단장의 뒤를 적막이 감쌌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타결이 임박했다는 언론 보도와 현재 협상 상황의 온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선 오전 9시10분,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은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헬기에 올라탔다.

청와대에는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선 노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마자 보고가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최후의 순간까지 국익을 위해 최상의 협상력을 발휘해 달라"고 협상단에 주문했다.

○…오후 3시께 하얏트호텔 1층에 설치된 프레스룸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협상 시한이 하루 더 연장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31일 오전 7시(미국시간 30일 밤 12시)에서 4월1일 오전 7시로 협상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미국이 요청했고,한국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오후 4시 협상장 밖으로 나온 스티븐 노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데드라인은 오늘 밤 12시"라고 말했다.

"누가 그런 루머를 퍼뜨렸느냐"며 역공까지 폈다.

청와대에서도 불끄기에 나섰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협상시한 연장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오후 4시 청와대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협상장에서 빠져나와 장관회의에 참석한 김현종 본부장은 중간 협상 결과를 보고했다.

농업과 자동차 섬유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이 일부 조율됐다.

오후 5시15분 하얏트호텔로 돌아온 김 본부장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협상이 급진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로 협상단의 분위기도 일순 뜨거워졌다.

○…오후 11시 접어들면서 미국 백악관 쪽에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고 타결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우리 측 금융분과장(신재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이 협상장을 나와 "밤 12시에 금융분과 협상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0일 중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병연/김현석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