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GATT(관세무역일반협정) 출범 후 무역 규모가 급증한 가운데 개방경제를 택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훨씬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의 끈질긴 방해로 자유무역은 수차례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고비를 넘겨왔다.
한국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이런 논란을 반복했다.
그러나 반대론자의 기대와 달리 자유무역이 경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온다는 경험적,학문적 증거는 더 풍부해지고 있다.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을 살펴본다.
자유무역 비판론자들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는 자유로운 교역이 선진국 이익만 증가시키고 개도국이나 후진국은 자원 수탈 등으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중심부 국가와의 경제 통합이 주변부 국가를 빈곤의 악순환에 빠뜨릴 것이라는 종속이론이나 민족경제론 등은 자유무역주의를 끝없이 괴롭혀왔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들은 이들의 주장과 반대로 자유무역이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뒷받침해왔다.
대표적인 게 제프리 색스,앤드루 워너 교수팀의 연구로 1970년대와 1980년대 개방경제를 채택한 개도국은 연 평균 4.5%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데 반해 폐쇄경제 체제를 유지한 나라는 연 0.7% 성장에 그쳤다.
선진국도 개방정책을 취한 나라는 연 2.3%,문을 닫은 나라는 0.7%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개방경제를 채택한 나라의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밝혀 제프리 색스 교수의 연구를 뒷받침했다.
개방 수준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구 결과도 나왔다.
경제학자인 제임스 과트니와 로버트 로슨 교수는 '무역 자유도'란 개념을 만들어 0(가장 낮은 수준의 개방)부터 10(가장 높은 수준의 개방)까지 척도로 자유도를 측정했다.
관세율,비관세 장벽,각종 규제 등을 종합해 무역 자유도를 측정하고 1인당 국민소득과 연관성을 측정해보니 자유도가 높을수록 소득도 높았다.
전문가들은 무역 자유화가 경제 성장률 및 국민 소득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된 반면 폐쇄경제를 택한 나라가 장기적으로 번영을 이룬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한국에서도 미국과 교역이 자유화되면 농업 금융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왔다.
하지만 미국도 한국이 비교 우위를 가진 제조업 같은 산업에서 일정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할인점 개방으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오히려 높아진 것처럼 경쟁 촉진으로 인한 혜택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자유무역과 관련한 세계적 논란 가운데 하나는 자유로운 교역이 중진국이나 후진국 노동환경을 크게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노동력 착취,노예 노동,아동 노동 등으로 근로자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후진국 근로자들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임금 수준도 매우 낮다.
하지만 선진국과 후진국 노동자를 비교해서는 안 되고 후진국의 다른 노동자와 임금 수준 등을 비교해야 옳다.
일례로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그레이엄은 미국 기업의 해외 지사 근로자의 임금을 연구했다.
조사 결과,후진국에 있는 미국 지사 근로자들은 해당 국가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무려 8배나 높은 소득을 올렸다.
중진국에 있는 미국 지사 근로자들의 임금도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아동 노동도 논란거리다.
하지만 아동 노동의 70%는 무역과 상관없는 가족 노동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실제 세계경제에 편입되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아동 노동이 제일 심각하다.
또 아동 노동 국가에 금수조치 같은 징벌을 내려봐야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자유무역으로 경제력을 높이는 게 근본 해결책이란 지적이다.
제프리 프랭켈 교수 등이 150개 국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1%포인트 높이면 개인 소득이 0.5~2%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 세계 30억명에 달하지만 나머지 30억명이 왜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지 분석해보면 자유무역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자유무역 반대론자들은 환경 파괴도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한다.
자본 유치를 위한 후진국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을 유인하기 위해 더 낮은 환경 기준을 적용하는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기업들은 같은 조건이라면 환경 규제가 적은 나라에 투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은 여러 고려 요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지,지식재산권이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잘 돼 있는지,근로자 교육 상태가 높은지 등이 훨씬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또 생산 표준화가 원가를 절감시키기 때문에 환경 규제가 강한 선진국 공장 기준을 후진국에도 비슷하게 적용하는 사례가 많다.
근본적으로 자유무역은 공해 방지 기술이나 청정 에너지 교역을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환경을 개선시킨다.
이와 관련,미국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소득이 늘어나는 초기 국면에 환경 파괴가 일어나지만 소득이 전환점(turning point)을 지나면서 환경이 개선되는 '역(逆) U자' 모양의 '쿠즈네츠 커브'를 발견했다.
진 그로스먼 교수 등은 후속 연구를 통해 국민소득 연 5000달러 수준을 넘어서면 평균적인 환경지표가 개선되며,8000달러를 넘으면 모든 분야의 공해지표가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비판론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다.
한국에서도 FTA 반대론자들은 자유무역으로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다며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격렬하게 반발했다.
물론 반대론자의 주장처럼 멕시코의 빈부 격차는 매우 심각하고 북부와 남부 간 삶의 질에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양극화의 결정적 요인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멕시코의 빈부 격차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시작됐을 만큼 뿌리가 깊은 문제다.
또 개방을 통해 멕시코의 교역량이 늘어나고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저소득층에 혜택이 덜 돌아간 것은 미개발 지역 인프라 부족,교육 보건 에너지 투자 정책 미비 때문이란 분석이 훨씬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박성훈 고려대 교수는 "자유무역과 함께 각종 제도(institution)도 발전시켜야 하는데 이런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유무역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자유무역이 △전 세계적으로 효율적 자원 분배를 유도하고 △각국별 상대적 경쟁력을 가진 제품의 생산을 촉진해 낮은 가격에 양질의 제품을 공급하며 △세계적 상품 서비스 교역이 이뤄져 소비자들이 싼 값에 질 좋은 제품을 쓸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