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개성공단 생산 제품의 원산지를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가 이번 협상에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추후 협상 대상'으로 남겨졌다.

양국은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빌트 인'(Built In)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방식은 극도로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는 일단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추후 의제로 미뤄 놓는 협상 방식을 말한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다시 한번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입주 기업은 개성공단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인정돼 관세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은 이미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와의 FTA 협상에서 역외가공 제품의 원산지를 인정해준 선례가 있는 만큼 개성공단 제품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적인 실리보다도 북한과의 관계 등 정치적 이유로 개성공단 제품을 꺼리고 있어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호전되면 한국산 인정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주 기업 관계자는 기대하고 있다.실제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한반도 역외 가공위원회'를 설치,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개성공단은 물론 북한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대부분 한·미 FTA와 관계없이 월 57.5달러 수준의 낮은 인건비 등 투자 여건이 좋다고 판단해 입주하고 있다. 다만 현재 입주 기업들은 대미 수출품을 개성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26.7%를 해외로 수출했지만 미국으로 나간 품목은 없다.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경우 이런 제약이 풀리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업체들이 우선 혜택을 볼 전망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자동차부품 업체인 대화연료펌프 최동훈 차장은 "대미 수출 비중이 40%나 되지만 개성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호주에만 수출하고 있다"며 "원산지를 인정받으면 개성에서 싼값에 대미 수출품을 생산할 수 있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발업체인 삼덕통상과 화장품 용기업체인 태성산업 등이 1차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에 '경쟁력 있는 생산지'를 마련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베트남 등으로 떠나는 중소기업들에 개성이 새 활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은 섬유업체 등의 개성공단 입주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