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비교적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낸 데는 한국 측 협상단의 007 같은 뒤집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초 미국이 제시한 협상 시한은 한국 시간 3월31일 오전 7시,미국 시간으로는 3월30일 오후 6시였다.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은 미국 시간 6월30일 자정(한국 시간 7월1일 오후 1시)에 만료된다.

여기에 서명 90일 전까지 대통령이 의회에 서명 의사를 통보해야 하는 TPA법을 감안하면 시한은 4월1일 자정(한국 시간 4월2일 오후 1시)이 되지만 이날은 일요일이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가 주말 휴일에 들어가기 전인 금요일(3월30일) 오후 6시(한국 시간 3월31일 오전 7시)까지 미국 의회에 통보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최종 통상장관 협상을 위해 한국에 오기 전 의회와의 조율을 통해 일요일인 4월1일 자정(한국 시간 4월2일 오후 1시)까지만 통보하면 된다는 해석을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국면으로 협상을 끝내기 위한 작전이었다.

즉 막판에 몰려 한국이 내놓은 모든 양보 카드를 본 뒤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시한을 연장하고,유리하면 그 시점에서 협상을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협상이 시작되고 처음 정한 시한인 3월31일 오전 7시가 다가오자 미국은 여유만만해졌다.

이틀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고 이는 자신들만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런 미국 전략에 따라 막판 난항 끝에 협상 시한이 48시간 연장되자 일부 언론은 한국이 미국의 전략에 말렸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한국 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의 TPA법 분석을 통해 이미 시한이 모호하다는 판단을 했고 의회의 양해가 있다면 연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미국이 여유만만해지자 우리도 모르는 척 벼랑 끝 전술을 썼다"고 말했다.

실제 농업 분과에선 시한을 2시간30분 앞둔 3월31일 오전 4시30분쯤 배종하 분과장이 미국 협상단에 우리 측의 농산물 분야에서 '이런저런 것은 양보 못한다'는 최종 양허안 카드를 던졌다.

배 국장은 카드를 던진 뒤 "그냥 자자"고 말했다.

배 국장의 전격 공세에 미국 협상단은 깜짝 놀랐다.

한국이 막판에 몰려 '이렇게 하자'고 조를 줄 알았던 미국은 '이런저런 것은 양보 못한다'는 최후 통첩에 도리어 당황했다.

미국은 새로 작전을 짰다.

의회와 협의했더니 4월2일 아침 6시(미국시간 4월1일 오후 5시)까지 봐준다고 했다면서 새로운 시한을 설정했다.

그러나 4월2일 아침 6시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한국 협상단은 미국이 4월2일 낮 1시까지,미국 시간 4월1일 자정까지만 의회에 통보하면 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끝까지 양보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거꾸로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자신들의 법인 TPA법이 정한 시한에 몰려 양보안을 내놓은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